불법 점거 운동 덕분에 되살아난 영화관
2015년 2월 6일  |  By:   |  문화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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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보헤미안 트라스테베 구역에 있는 그 건물은 1950년대에 지어진 낡은 영화관입니다. ‘씨네마 어메리카’라는 이름의 이 극장은 1990년대 후반에 문을 닫아 14년 동안 상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1월 13일, 발레리오 카로치라는 스물 한 살 언론학과 대학생이 친구 50명과 함께 점거 운동을 벌이며, 이 극장은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됩니다.

이 극장은 원래 주차장이나 고급 아파트로 재개발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이 곳이 로마의 문화와 예술이 기념되는 장소로 부활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곡괭이, 철봉, 드릴 등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이 빗장을 풀고 영화관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페인트를 새로 칠했습니다. 이웃 주민은 학생들이 점거 운동을 지지했고 심지어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4개월 뒤 극장은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내 극장은 만석을 이뤘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파솔리니의 《아카토네》, 세르조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같은 고전 명작을 단 2유로(약 2500원)에 즐길 수 있었습니다.

카로치 뿐만 아니라 루이사, 로렌조, 알레산드로 등 여러 학생이 영화관 되살리기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이 계획이 실천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오후마다 로마 근대 문화 유산 주변을 배회하며 어떻게 버려진 건물을 부활할 수 있을 지 고민했습니다. 6개월 동안 장소 물색을 끝낸 뒤 학생들은 마침내 로마에서 가장 큰 극장 중 하나인 ‘씨네마 어메리카’를 점거했습니다.

“가방에 짐을 너무 넣지 마라.” 카로치는 극장을 점거하기 전 친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속옷 세 벌, 양말 세 켤레, 침낭 하나.” 이 젊은 친구는 너무나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해서, 일간지 《라 리퍼블리카》는 그를 “점거 전문가”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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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카로치와 친구들은 극장 점거 전에 시 당국과 사전 조율을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영화계의 명사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에토레 스콜라, 파올로 소렌티노, 마테오 가로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프란체스코 로시, 타비아니 형제 등이 극장 점거를 지지했습니다. 점거 학생들은 제작자, 배급자, 배우, 감독, 작가 등과 강한 연대를 구축했습니다.

이탈리아 영화계는 로마 시에서 극장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간 영화관 42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2014년 12월 말 로마를 방문한 영국 영화 감독 켄 로치는 자신의 작품 《지미스 홀》을 ‘씨네마 아메리카’에서 상영하며 점거 운동 활동가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들은 예술을 수호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가 틀렸다는 말이 편견임을 증명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사이에는 밀접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점거 운동이 그러하듯, 우리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 연결 고리를 지켜야 합니다.”

비록 극장 점거 자체가 불법이기는 하지만, 카로치와 대학생들은 가능한 한 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으며 사회 상식 규범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폭력에도 반대하며, 다른 저항 단체와는 거리를 유지하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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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거 운동 덕분에 카로치는 런던부터 뉴욕까지 세계 외신이 인터뷰하러 오는 일종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는 극장 점거 운동 자체 뿐만 아니라 로마, 이탈리아, 그리고 청년 세대 문화에 관한 생각을 전파하기 위해 그런 유명세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점거 학생들이 새로 만든 ‘씨네마 어메리카’ 홈페이지에는 극장 역사와 상영표가 있고, “점거”의 영광을 상징하는 티셔츠 판매 코너도 있습니다. 이 ‘점거 전문가’는 영업도 잘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 사회가 응답했습니다. 당국은 학생을 처벌하지 않았고 점거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르조 나폴리타노는 지지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2014년 7월,이탈리아 문화부는 극장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잘 흘러가지만은 않았습니다. 극장 소유주는 불법 점거에 크게 반발했습니다.  영화관 주인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강제 퇴거 영장을 얻었습니다. 2014년 9월 3일 영장은 집행됐습니다.

그날 밤 카로치는 극장에 혼자서 자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경찰이 “이렇게 잘 관리된 극장은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경찰은 카로치를 체포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는 당일 저녁 풀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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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뒤, 카로치는 극장 바로 옆에 있는, 오래전에 버려진 낡은 빵집에서 다시 점거를 시작했습니다. 그 곳을 청소하고 꾸몄으며 영화에 관한 토론을 하는 곳으로 바꾸었습니다. 동시에 ‘씨네마 어메리카’ 소유주와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여론에 떠밀린 소유주 측은 이제 극장 자리에 주차장, 슈퍼마켓,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보상금을 원했습니다. 아주 많은 돈을 원했죠.

“소유주 측은 그 극장을 2백만 유로에 샀었다고 합니다.” 카로치의 한 친구가 말합니다. “극장을 되파는데 그 두 배의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건 너무 비쌉니다. 우린 250만 유로(30억 원)를 제시했습니다. 이 돈은 대부분 영화계 인사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될 것입니다. 더 협상이 필요합니다.”

소유주가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결론이 어떻게 나든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 점거 학생들은 로마 시민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원문출처: 누벨 옵세르바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