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미테이션 게임’
2015년 2월 3일  |  By:   |  문화  |  No Comment

(역자주: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2월17일 개봉합니다. 나치 독일의 암호를 풀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재로 했습니다. 아직 한국 언론 리뷰가 나오지 않은 시점이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리뷰를 소개합니다.)

“집중하고 있습니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지막히 속삭입니다. 모튼 틸덤 감독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이야기에 푹 몰입될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저미는 우울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2011년 작 ‘헤드 헌터’에선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던 틸덤 감독이 선사한 이 흥미진진한 전쟁 암호 해독 스릴러는 전 영국 총리 고든 브라운이 말했듯 용감했던 영국 천재 앨런 튜링이 “응당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했었”음을 말해줍니다.

수학자이며 인공지능 개척자인 앨런 튜링은 2차대전의 운명을 바꾸는 큰 공을 세웠지만, “엄중한 외설행위(gross indecency, 동성애)”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1954년 그는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고 죽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2013년에 와서야 여왕의 특별 사면권에 의거 튜링을 공식 사면했습니다.

하지만 <이미테이션 게임>은 비극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튜링의 비범한 업적을 기리는, 그 까칠한 성격의 외면받은 주인공을 영웅으로 확고히 세우는 대중적인 얘기입니다. 각본가 그레이엄 무어는 그걸 한마디의 대사로 함축했습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해낸다.”

컴버배치가 연기한, 제대로 해독이 불가능한 별난 사람(odd duck) 앨런 튜링은 1939년 영국 처칠 내각이 독일군 암호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설립한 비밀 연구소에 들어갑니다. 영국의 내노라하는 천재들이 모인 이 암호 해독팀은 컴퓨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자동계산기 ‘봄(Bombe)’을 동원해 연구에 나서지만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캠브리지대 출신 조안 클라크(키이나 나이틀리 주연)가 탁월한 퍼즐 풀이 능력을 통해 연구팀에 합류하고 (이례적으로) 튜링의 마음을 얻습니다. 계산기 톱니바퀴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동안 튜링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의 비밀을 품고 어린 시절 잃은 친구를 기계 이름에 투영하는 등 자신을 둘러싼 여러 신호를 해독하려는 씨름을 계속합니다.

1986년 연극 <암호 깨기>(1996년 BBC가 각색해 데렉 자코비가 튜링 역을 맡음)의 시간 이동 구조를 확장해, 능란한 각본가 그레이엄 무어는 크게 세 가지 시기로 이야기를 구분합니다. 첫째는 절친 크리스토퍼와 함께 암호 풀이 퍼즐을 즐기던 어린 시절입니다. 두번째는 비밀 연구소에서 에니그마 암호 해독을 하던 가슴 졸이던 시기입니다. 세번째는 1952년 튜링의 자택에 들이닥친 경찰이 그의 성적정체성을 알게 되고 이후 끔찍한 결과를 낳은 시기입니다

실화 소재를 두고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하다보니 지나치게 이야기를 과장했다는 논란을 낳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앨런 튜링 전기 작가 앤드루 호지스는 “튜링과 (여주인공) 조안과의 관계는 제작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또 암호해독팀 소속 연구원의 형이 비운의 배에 탑승한다는 얘기도 인위적입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고증을 희생한 부분은 또 있습니다. 암호해독팀이 사용한 계산기 “봄”는 사실 작은 도구 상자 크기의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계의 복잡함을 관객이 이해하기 위해 영화 속 계산기는 전선이 비비꼬인 거대한 기계로 묘사됩니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앨런 튜링과 기계사이의 어떤 로맨스를 그렸습니다. 앨런이 그 기계에 사랑스런 별명을 붙이는 것은 왠지 괴물 프랑켄슈타인 신부를 연상시킵니다. (여주인공 조안은 튜링과 싸움을 한 뒤 “당신은 괴물이야”라고 외칩니다.) 또 이 영화의 제목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이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지금 나와 말하는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기계인지를 맞추는 대화 게임에서 따왔는데,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인간인지 기계인지를 판별하는 테스트(보이트-캄프 테스트) 개념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 데커드가 로봇 여인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듯이 튜링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 지능 기계에 매료됩니다. 튜링과 그의 기계는 힘을 합쳐, 낯선 이와 낯선 이 사이에서 주고받는 소통의 공통 언어를 찾아 해독하려고 애씁니다.

이 소외된,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을 다루는 <이미테이션 게임>은 자칫 냉소적으로 잘난체하는 영화가 되거나 기계적으로 짜맞춘 영화가 되기 쉬웠을 겁니다. 주인공을 단순히 복잡한(complicated) 인물이 아니라 복합적인(complex) 인물로 연기한 컴버배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 속 대사는 굵고, 명확하고, 간결합니다. 하지만 컴버배치는 마치 진짜 소련 첩자 느낌마저 드는, 암호 수수께끼처럼 감추어진 튜링의 진정한 동기와 감정을 잘 재현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찬사는 아역 배우 알렉스 로더에게 돌아가야 겠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앨런 튜링 역을 매우 영리하게 연기한 덕분에, 어른이 된 컴버배치의 괴로운 고립감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 앨런 튜링은 매력적인 이해 못할 인간으로 등장하지만, 나머지 동료들은 인물 묘사 삽화, 딱 어울리는 캐스팅, 효과적인 연기 덕분에 단박에 캐릭터를 드러냅니다. 변덕스러운 스튜어트 멘지스 준장 역의 마크 스트롱은 주인공 팀을 때론 위협하고 때론 포용하는 배후 인물 역을 맡았습니다. 키이나 나이틀리는 똑똑한 상류층 여성 역을 맡으면서도(“오”라는 감탄사를 말할 때의 악센트를 들어보세요), 조안이라는 인물에 따뜻함과 인간미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녀가 튜링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 덕분에 관객은 튜링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암호에 다가갈 수 있게 됩니다.

원문출처: 가디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