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의 추락에 떨고 있는 이웃 나라들의 ‘송금 경제’
2015년 1월 20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세계은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러시아로부터 보내오는 송금이 줄어 타격을 받을 나라 아홉 곳을 꼽았습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거나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국가들이 주로 여기에 포함됐는데,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GDP 중에 해외에서부터 들어오는 송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점입니다. (아르메니아 21%, 그루지야 12%, 키르기즈스탄 31.5%, 몰도바 25%, 타지키스탄 42%, 우크라이나 5.5%, 리투아니아 4.5%, 아제르바이잔 2.5%, 우즈베키스탄 12%) 이들 나라로 보내지는 송금액은 매년 총 37조 원이고, 이 가운데 약 20조 원이 러시아에서 오는 돈입니다. 이미 절반 가량 가치가 폭락한 러시아 루블 탓에 올 한해 이들 아홉 나라로 들어오는 송금액은 무려 11조 원이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이터로 나타난 송금액은 은행을 비롯해 집계가 가능한 영역의 액수만을 합한 것입니다. 실제 인편을 통해 오고 가는 금액까지 더하면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인한 파급력은 훨씬 더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탓에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대거 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러시아 기준으로는) 저임금에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도 열악한 일터에서 일하면서도 본국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꾹 참고 일해왔습니다. 순식간에 본국으로 보낼 수 있는 돈이 반토막 난 지금 더 이상 러시아에서 고생하면서 일할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또한 러시아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불법 체류자 신분인데, 러시아 정부가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 절차를 강화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래저래 러시아 밖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 경제에도 악순환을 불러올 것입니다. 특히 오는 2018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한창 계속되어야 할 각종 건설 현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 그대로 방치될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받을 경제적 타격도 이미 현실화됐습니다.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 통화 가치도 덩달아 크게 떨어졌습니다. 유라시아 국가들은 그간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블록화에 박차를 가해 왔습니다. 러시아와 벨로루시, 카자흐스탄에 이어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즈스탄까지 가입한 유라시아 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이 그 좋은 예입니다. 상호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지역 경제의 특성상 이 나라들의 통화가치 뿐 아니라 GDP를 비롯한 주요 경제지표가 러시아의 뒤를 이어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경제위기가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한데, 특히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사실상 독재자의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지고 있는 나라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러시아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에게 부치는 돈은 이 나라들의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 가운데 하나이자, 독재자에 대한 저항을 입막음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약 240만 명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본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불만이 고조되어 독재 정권에도 큰 고민이 될 것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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