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율법과 언론의 자유는 사이좋게 공존할 수 없을까?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리버럴한 현대인이 동시에 전통적인 이슬람교인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꼭 샤를리 엡도 사건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지난주에만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블로그에 불경스러운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태형 1000대와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블로거에 대한 첫 집행(태형 50대)이 이뤄졌으니까요.
전통적인 이슬람교에서 중도파로 불리는 권위자에게 문의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출생으로 영국에서 자랐고, 현재는 말레이시아 대학의 이슬람교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무함마드 하심 카말리는 이슬람교가 사실 종교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며, 많은 문제에 있어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로부터의 배교가 허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카말리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교리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슬람 전통은 선동, 혼란, 무정부 상태 등 다양한 의미를 갖는 “피트나(fitna)”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피트나로 이어질 수 있는 말은 비난을 사니까요. 초기 이슬람 국가에서 선동과 이단은 거의 같은 개념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신의 뜻을 행하는 칼리프에 대항하는 것은 곧 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니, 반역은 곧 불경이었죠. 카말리 교수의 말은 이렇습니다. “정부 지도자를 비판하거나 공적인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무슬림과 비신자를 불문하고 시민의 권리다. 그러나 이슬람교 도그마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자건 비신자건 비판할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견이 권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현대의 자유의지론자에게는 깜짝 놀랄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국가에게 이런 믿음을 모든 구성원에게,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강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역시 “교리에 대해 개인이 의견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해달라고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종교가 변하기는 어렵지만, 서구 사회의 시민이 된 무슬림들의 경험으로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변화의 조짐은 샤를리 엡도 공격에서 숨진 경관을 추모하는 무슬림들의 트윗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나는 사망한 경찰관 아흐메드다, 샤를리는 내 종교와 문화를 조롱했지만 나는 샤를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다”는 내용의 트윗이었죠. 이 말은 또 다른 파리 시민 볼테르의 명언(“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당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을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나에세는 볼테르가 한 말인지, 전기 작가가 지어낸 말인지 알 수 없는 그 명언보다, 무슬림들의 트위터에서 나온 최신 버전이 더욱 감동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