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의 세계화와 ‘인터넷 자유’의 잣대
2015년 1월 8일  |  By:   |  IT, 세계, 칼럼  |  No Comment

중국 정부는 최근 중국 서버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이 구글이 제공하는 쥐메일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웃룩이나 애플메일을 통해 쥐메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막아버린 겁니다. 쥐메일을 사용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더 까다로워진 이용자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중국 회사가 운영하는 이메일 서비스로 갈아타는 겁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미국 회사에 대한 인터넷 의존도를 낮추는 건 중국 정부의 인터넷 정책의 근간 중의 하나입니다. (별다른 확증은 없지만) 북한 정부가 소니를 조직적으로 해킹했다는 의혹을 산 뒤에 온 나라의 전산망이 먹통이 됐습니다. 인터넷 주권(technological sovereignty)은 올 한해 화두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러시아 정부도 지난 여름 비슷한 법안을 마련하고 인터넷 주권 지키기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민들, 네티즌들에 관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인터넷 회사는 반드시 서버를 러시아 영토 내에 두고 운영해야 한다는 법안인데, 이 법안의 영향으로 구글은 모스크바에서 서버를 운영하던 자회사를 철수시켰습니다. 러시아는 또한 최근 페이스북에 반정부 인사인 나발니(Alexey Navalny)를 지지하는 시위를 알리는 페이지를 차단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정부가 인터넷 주권을 지키려는 목적 아래 행동에 나서면 이는 정보를 통제하고 검열을 강화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특히 미국 언론에서는 이를 그렇게 다룹니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가 미국 회사들로 하여금 브라질의 인터넷 정보 데이터를 브라질에 저장하도록 요구했을 때 이 또한 지나친 인터넷 통제이자 정부의 불필요한 시장 개입이라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 브라질 정부의 행동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정보를 통제하고 검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나친 영향력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늘 주창해 온 가치 중립적이고 세계적인 단일 인터넷망이 오히려 허구에 가깝고 실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것이라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정부의 시도는 인터넷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주권 국가의 정당한 대응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주춤했을지 몰라도 구글은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며 강력한 제국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이메일 서비스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상품일 뿐 구글의 진짜 위력은 통신망을 비롯한 전 세계 인터넷 기간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보의 유통을 관리하는 데서 나옵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시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남미 국가들이 자체적인 통신망을 건설해 미국에 대한 정보 의존도를 줄이려 하자 약 670억 원을 들여 브라질과 미국 플로리다 주를 잇는 해저 케이블 건설을 지원하고 나선 것도 구글입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정보 제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해봤자 가장 손쉬운 대안 가운데 하나가 구글이라는 사실을 각국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글을 비롯한 ‘미국 인터넷 회사’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인터넷 세계화의 첨병일까요? 스노든의 폭로로 알려진 일련의 사실을 살펴보면 분명 미국 정부와 인터넷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얽혀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업들은 줄곧 정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왔습니다. 때로는 미국 정부와의 소송을 불사하면서 말이죠. 실리콘 밸리 회사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 보호나 검열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기업 활동에 개입하지 말라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기업이 미국 정부의 대리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존(Verizon)이 미국 국가안보국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출하고 공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독일 정부는 버라이존과 진행하던 통신 사업 계약을 파기하고 독일 회사에 프로젝트를 맡깁니다. 인터넷 주권을 지키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정보 주권에 관한 미국 정부의 위선 아닌 위선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벌이고 있는 법정 다툼을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두고 저장해둔 이메일 정보를 수색하려 하는데, 미국 국내에만 적용되는 영장을 발부해 이 정보에 접근하려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회사이고, 자회사가 어디에 있는 해당 정보는 사실 사이버 상에 있는데, 사이버 세상에는 국경이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느 나라 영토에 세워둔 회사를 통해) 관리하고 있는 데이터든 미국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접근이 가능한 정보라면 미국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 정부의 논리입니다. 만약 중국 정부가 같은 논리를 들고 나온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중국, 러시아 정부가 말하는 인터넷 주권은 자국민이 자국 영토 내에서 생산하고 유통한 인터넷 상의 정보를 스스로 관리하겠다는 것인 반면, 미국 정부가 말하는 인터넷 주권은 해당 정보가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산, 유통되었든 미국 회사가 만들고 제공한 통신망 내에 저장된 정보는 미국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사실상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터넷 검열과 통제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물론 이란과 같은 나라의 정보 통제를 비난하고 막아서기에는 궁극적으로 명분이 부족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이 말하는 인터넷 자유는 미국 밖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인터넷 제국주의나 다름없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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