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할 수 없는 이론들: 끈이론과 다중우주론
올해 물리학계에서 일어난 논란에는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관찰 결과를 통해 우주의 기본 원리를 검증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몇몇 연구자들은 이론물리를 검증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이론이 충분히 아름답고(elegant), 또 우주를 잘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이 굳이 실험적으로 검증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이는 과학지식은 오직 실험적 증거로만 뒷받침되어온 수백 년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말했던 것처럼, 한 이론은 오직 반증 가능할 때에만 과학적일 수 있습니다.
한 이론이 그 이론이 가진 우아함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과학자들은 바로 끈이론을 연구하는 이들입니다. 사실 끈이론은 오늘날 네 가지 우주의 기본힘(역자주: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통일장 이론의 유일한 후보이며, 따라서 이들은 비록 이 끈이론이 우리가 절대 관측할 수 없는 잉여의 차원들을 가정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에 어떤 일말의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천체물리학자들 중 일부도 역시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론인, 무수히 많은 우주의 존재를 가정하는 다중우주이론과 측정이 곧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는 양자역학 버전의 다중우주이론, 그리고 빅뱅 이전의 우주에 대한 이론 등을 이야기하며 이런 흐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증명할 수 없는 이론들은 현실에서 실험적으로 증명된 ‘소립자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이나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이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즉, 이 새로운 이론물리 분야는 수학과 물리학, 철학의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어정쩡한 분야가 될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우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피터 우잇의 “Not Even Wrong”이나 리 스몰린의 “The Trouble with Physics”, 짐 배것의 “Farewell to Reality” 등의 책이 이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3월, 이론물리학자 폴 슈타인하트는 지금의 인플레이션 우주모형은 어떤 관찰결과도 모두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과학적인 모델이라 할 수 없다는 글을 네이처 지에 실었습니다. 이론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리차드 데이위드와 천체물리학자 션 캐럴이 폴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그들은 이론물리의 경우 다른 과학 분야만큼 실험적 증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철학적 주장을 펼쳤습니다.
데이위드와 캐럴은 적어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받을만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기후변화에서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몇몇 정치인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과학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론물리에 대한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벌일 이 논쟁에는 이들의 다툼이 과학과 이론물리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라는 보다 신중한 고려 역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끈이론(String theory)
끈이론은 다차원 우주의 매우 작은 크기의 끈(1차원 개체)과 막(다차원 개체)이 우리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서 다차원은 매우 작게 말려있어 현실적인 입자가속기 내의 입자의 충돌에 의한 에너지 수준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끈이론의 어떤 측면은 원칙적으로는 실험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초대칭, 곧 페르미온과 보존 사이의 대칭은 끈이론의 중요한 결과이며, 이 이론은 모든 입자들이 아직 관측되지 않은 쌍입자를 가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 의 LHC 에서 아직 그런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쌍입자들이 계속 관측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입자가 존재하는지를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끈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쌍입자의 질량이 가속기가 만들 수 있는 에너지보다 크다고 언제나 주장할 수 있습니다.
데이위드는 끈이론의 연구 과정을 철학적으로, 그리고 확률적으로 논증함으로써 이 이론의 진실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어떤 이론이 일련의 사실들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베이지안 방법론을 통해 끈이론이 참이거나 적어도 현실과 맞아떨어질 확률을 높여감으로써 끈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확률은 순전히 이론적일 뿐입니다. “누구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른 대안이 없이도 지금까지 잘 맞아왔기 때문에” 그는 끈이론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주객을 전도시키는 것입니다. 특정 이론에 대한 신뢰는 그 이론을 지지하는 관찰결과들에 의해 증가해야 하는 것이지, 추론 자체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높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수학적으로 논리적인 결과가 항상 현실과 맞아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름답고 간결한 이론이 실험결과에 의해 배척당한 무수한 예가 있습니다. 정상우주론이 그랬고 강한 핵력과 약전자기력을 통합하는 SU(5) 통일장 이론이 그랬습니다. 확립된 사실들 이상의 진리를 추론에 의해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귀납주의는 포퍼를 비롯한 20세기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반박된 바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아직 그 대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또는 모든 힘을 통일하는 하나의 이론이 있을 것이라는 그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끈 이론에는 여러 가지 버젼이 있으며 아직 잘 정의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끈이론은 그런 통일장 이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의 주장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중우주론(Many multiverses)
다중우주론은 하나의 수수께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왜 자연의 기본 상수, 예를 들어 입자들 사이의 전자기력 크기를 결정하는 미세구조 상수와 우주의 팽창을 결정하는 우주상수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좁은 범위안에 존재하도록 되어 있는가 하는 수수께끼입니다. 다중우주이론은 가능한 모든 상수로 만들어진 다른 관찰 불가능한 우주가 저 바깥에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어딘가에, 우리 우주처럼 생명체가 있는 그런 우주가, 아무리 그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물리학자들인 이 이론만큼 우리 우주가 가진 어떤 특이한 우연들을 잘 설명해주는 이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왜 우주상수가 양자장론의 예측보다 10^120만큼 작은지는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실험 결과입니다.
올해 초, 캐럴은 포퍼가 제시했던 반증 가능성 기준을 “무딘 도구(blunt instrument)”라고 부르며 다중우주론과 다세계해석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과학이론이 가져야 할 다른 두 기준을 내 걸었습니다. 그것은 과학 이론은 “명확해야(definite)”하며 “경험적(empirical)”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명확하다는 것은 그 이론이 분명해야 하고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며 경험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이 실험결과를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중우주론은 천체물리학자들의 그 어떤 측정값에 대해서도 설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한 우주의 변수들이 어딘가에는 존재하며, 따라서 이 이론은 수많은 조절 가능한 변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변형한 단위모듈 중력이론(unimodular gravity) 역시 우주상수가 왜 크지 않은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중우주론을 검증 가능한 형태로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는 우주의 공간곡률이 음수가 된다면 틀린 것으로 판정될 다중우주론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다중우주론은 기본적으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끈이론과 다른 우주들에서는 어떤 다른 물리학이 가능할 것이라는 다소 추론적인 사고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검증이 아니라, 이론 자체가 아직 튼튼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편, 물리학자 휴 에버렛이 제안한 다세계이론의 양자역학 버젼이 바로 궁극적 양자 다중우주론입니다. 에버렛은 측정 전까지는 임의의 방사선에 의해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다고 여겨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측정 후 만들어진 각각의 우주에서 실제로 살아있거나 죽어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곧 어떤 우리의 사소한 선택도 각각의 선택에 해당하는 우주가 양자진공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우주, 그리고 그 우주 안의 역시 수없이 많은 은하와 우리의 복제본이 서로를 확인하거나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나 중에서 내가 지금 경험하는 나는 도대체 어느 것일까요? 그 많은 나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많은 나 중에 어떤 나는 다중우주론을 지지하고 다른 나는 그렇지 않다면 자연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과연 알 수 있을까요?
나는 천체물리학자들이 수학자 힐버트의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비록 무한대라는 개념이 수학을 완전하게 만드는 데 필요하지만, 이 우주 어디에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검증하기
나는 이론물리학자 사비네 호센펠더의 ” ‘포스트 경험과학’이라는 말은 자가당착이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그 이론들이 내어놓은 예측결과가 실제 실험결과와 일치했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은 우아하고 유혹적인 이론들이 실제 측정결과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폐기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부터 켈빈 경의 나선형 원자모형, 프레드 호일의 영구적 정상우주론이 그랬습니다.
어떤 이론이 자신의 중요성을 과장할 경우 그 결과는 심각할 수 있습니다. 그 이론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에 실제 관측결과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순간, 학생들과 대중들은 과학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오해하게 될 것이고, 다른 유사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똑같은 방식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리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과학적 방법론을 다듬어야 합니다. 나는 결국 이 주제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은 곧 “그 이론이 틀렸다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만들 어떤 잠재적인 관찰 또는 실험결과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며, 만약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이론은 과학이론이 아닙니다.
이 이론은 잘 정의된 철학적 어법으로 다듬어져야 합니다. 내년에는 이 문제를 다룰 학회가 열리기를 기대합니다. 양 진영의 학자들이 모두 모여 이를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전 까지는, 각 논문지의 편집장들은 이 이론의 결과들을 다른 부류로 분류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론 분야가 아니라 수학 분야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론을 주도하고 있는 기관이나 학과는 한 번 더 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검증 가능한 이론만을 과학으로 공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과학을 지키는 길입니다.
(네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