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은 아시아계 학생을 차별하고 있습니까?
2014년 11월 26일  |  By:   |  칼럼  |  No Comment

지금부터 약 백 년 전쯤 하버드 대학교는 큰 골칫거리 하나를 갖고 있었습니다. 1900년 하버드대 신입생 가운데 유대인은 7%에 불과했지만 1922년에는 21.5%를 차지해 예일대나 프린스턴대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입니다. 아이비리그 대학 가운데 하버드보다 더 유대인 학생 비중이 큰 학교는 컬럼비아대와 펜실바니아대 밖에 없었습니다.

하버드대 총장 로렌스 로웰은 이런 유대인 유입이 “학교를 망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전체 신입생의 15%를 못 넘도록 상한선을 두려 했지만, 학교 임원들은 노골적으로 상한선을 세우는 데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로웰 총장은 입학 심사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버드 입학 위원회는 인성 및 적합성(character and fitness)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도입해 유대인 신입생 입학을 제한했습니다.

비슷한 불공정이 오늘날 아시아계 학생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일류 대학에 진학하려면 아시아계 고등학생은 SAT(미국의 수능에 해당) 점수를 백인 학생에 비해 150점 이상 높게 받아야 합니다. 2008년 조사를 보면, 하버드에 입학원서를 낸 지원자 중 최고 수준(exceptionally high)의 SAT 점수를 받은 학생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계 학생이었지만, 전체 신입생 가운데 아시아계는 17%였습니다. (지금은 20%입니다.) 아시아계는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빨리 증가하는 인종이지만, 하버드 학부생 중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 모임>이라는 단체가 하버드 대학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했습니다. 원고 측은 하버드 대가 신입생을 뽑을 때 인종별로 할당량을 정해놓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매년 인종별 신입생 입학자 비율은 놀라울 만큼 일정합니다. 더 신기한 것은, 어쩌다 아시아계 입학생이 예년보다 많이 입학한 경우, 그다음 해에는 평소보다 아시아계 입학생이 줄어듭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현 상황을 옹호하는 가장 흔한 논리는 아시아계 학생이 비록 시험 점수는 높다 하더라도 점수화되지 않는 요소, 예를 들어 독창성이나 리더십 같은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1988년 하버드 입학사정관이었던 윌리엄 피츠시몬스는 아시아계 학생이 “과외 활동에서 다소 약점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설명이 과거 유대인 학생을 묘사하던 방식과 얼마나 유사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아시아계 학생의 과외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는 거의 없습니다. UCLA 대학 지원자 10만 명을 조사한 결과 인종과 과외활동 성취도 사이에는 어떤 유의미한 상관관계도 없었습니다.

아시아계 학생이 백인 학생보다 뚜렷한 개성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진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아시아인은 획일적이고 차이가 없다는 오래된 편견 때문에, 아시아계 학생이 개성이 없다고 인식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유대인은 독창적이지 못하고, 욕심 많은 출세주의자라는 비방에 시달렸지만, 유대인이 미국 사회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자명합니다. 오늘날 아시아계 미국인이 사회에 공헌을 적게 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여러 역사적 유사성이 있지만, 과거와 지금 사이에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로웰 총장 시절 하버드대는 백인 개신교도 엘리트의 요새였습니다. 반유대주의가 넘쳐났죠. 지금 하버드는 인종과 종교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곳이 됐습니다. 학생 15%는 가족 가운데 자신이 대학에 처음 입학한 사람입니다. 하버드에서 학생으로, 또 선생으로 7년을 보내면서 저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학생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왜 새로운 차별 정책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시아계 미국인이 많이 입학하게 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학이 줄어드는 역효과가 난다고 우려하는 교수도 많습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할당량을 부여하는 정책(affirmative action)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두 집단의 문제를 서로 연결짓습니다. 하지만 두 문제는 서로 관련이 없습니다.

대법원이 이미 인정했듯이, 대학은 소수자 집단에 속한 학생을 적정 수준만큼 뽑음으로써, “다양성을 통한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누리려고 합니다. 이런 논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라틴계 같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입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소수자 배려라는 논리는 왜 중국, 한국, 인도 혈통의 학생이 덜 뽑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도 없고 정당화할 수도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는 하버드 대학이 아프리카계 미국인(현 신입생의 12%)과 히스패닉(13%)에 너무 우호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동문 자녀(전체 학생의 12%)와 운동특기생(약 13%)의 편향에 대해서는 눈을 감습니다. 진짜 주목해야 할 문제는 능력 중심으로 학생을 뽑을 경우 백인은 소수자가 될 것이고 이 사실이 하버드 대를 불편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일류 대학 입학 자격증은 희소한 자원입니다. 누굴 입학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경쟁하는 가치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우수성만이 유일한 기준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무엇에 관한 우수성일까요? 나중에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지를 기준으로 삼을까요? 아니면 누가 사회에 더 공헌할 가능성이 높은지를 볼까요?

여기에 유일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답이 뭔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입학 사정에 과외 활동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은 물론 공정한 일입니다. 하지만 ‘무형의 자질’이라든지 ‘다재다능함’같은 모호한 기준을 내세우는 현행 입시 체제는 너무 불투명해서 차별을 감추기 쉽습니다. 그런 기준은 로웰 총장 시절 성적이 우수한 소수자를 배제하는 데 쓰였고 오늘날 같은 목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법적, 도덕적 이유에서, 대학은 자신들의 입학 심사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그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학생을 탈락시키는 관행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 입학 심사 기준을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을 쓴 야스카 문크는 정치 이론가로 현재 하버드에서 작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문출처: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