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주의자 비밀 집회 르포
10월 4일 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식당에 모인 70명은 거의 다 남성이었습니다. 이들은 긴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체포될까봐 걱정했습니다.” 전직 외교관 토미슬라프 수니치 연설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인으로 미국 시민권자이며 신우파 이론의 주역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연설에서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이 모임에서 연설하기로 예정되었던 몇몇은 헝가리 정부에 의해 추방됐습니다. 원래 이 집회는 ‘유럽의 미래와 인종 혼합의 위험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벌이는 대규모 토론회로 기획됐지만, 실제는 거의 비밀 집회였습니다.
전날 밤, 집회 참가자들은 마치 암호문 같은 SMS 문자를 한 통 받았습니다. “부다페스트 남부역 근처에 있는 장난감 가게를 찾아라. 거기서 그 장소로 걸어오라.” 정확히 그 장소가 어디인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모두 그 장소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집회는 자칭 우익 씽크탱크라는 미국의 국가정책연구소(NPI)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연구소는 10월 초에 부다페스트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할 거라며 헝가리 야당 요빅당(Jobbik)도 참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참가비는 1인당 150달러 선불이었습니다.
연설자 명단은 화려했습니다. 먼저 요빅당 정치인 마르톤 굉괴시와 러시아 우익 거두 알렉산드르 두긴이 있었습니다. 두긴은 푸틴 대통령의 신유라시아 구성과 대 우크라이나 강경책에 큰 영향을 준 사상가입니다. 미국 쪽에선 주최 측인 리처드 스펜서와 “인종 현실주의자” 제라드 테일러가 참여했습니다. <세대 정체성>의 저자 마르쿠스 빌링거도 강연 예정자였습니다.
이 이름들이 낯설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익 진영에서 이들은 슈퍼스타입니다. 최근 독일 바바리아 지방 기독교 사회연합(CSU) 당원들은 “난 흑인이 싫다”고 말하는 대신, “리처드 스펜서와 마르쿠스 빌링거의 이론에 관심이 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이 집회가 국제적 비난을 일으킬 걸 우려했습니다. 좌파 야당은 이미 집회 승인을 두고 집권당을 잠재적 인종차별 정부라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헝가리 정부는 돌연 집회를 금지했는데 그게 또 논란이 됐습니다. 우파 진영에선 “왜 표현의 자유를 막느냐?”며 항의했습니다. 리처드 스펜서를 비롯한 주최 측은 10월 1일 부다페스트 모임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행사 강행 발표 다음날 밤 리처드 스펜서는 경찰에 구금됐습니다. 술집에서 다른 참가자와 함께 회의하던 자리에 경찰 50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체포 장면을 찍은 유튜브 동영상 조회 수는 1만 7천 회가 넘었습니다.
다른 연설 예정자도 헝가리에 도착하자마자 연행됐습니다. 알렉산드르 두긴은 아예 오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연설자 중 제라드 테일러와 토미슬라프 수니치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다페스트 남부역 장난감 가게 옆의 ‘그 장소’에 헝가리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소문을 듣고 기자들은 꽤 모였는데, 그 중 오직 세 명만이 “신원 확인(cleared)”이라는 절차를 거친 후 ‘그 장소’로 안내됐습니다.
집회 참가자 국적은 라트비아, 스웨덴,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다양했습니다. 비싼 교통비를 치르고 온 사람들입니다. 노년층은 서구의 몰락을, 중년층은 일자리 감소를, 청년층은 정체성 위기를 걱정했습니다. 독일에서 왔다는 프란코필 씨는 자신을 “인종적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며 요즘 독일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반인종주의 교육을 강제로 주입받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세뇌라는 겁니다. 그는 제라드 테일러의 강연을 듣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온 학생 3명은 민족 학생 연합(NSA) 소속이었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드르 두긴이 불참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두긴이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통렬히 깨주기를 기대했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마르쿠스 빌링거 강연도 듣고 싶었다며 그의 정체성 이론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빌링거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살아야 하며, 비유럽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잘 사는 방법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론가입니다.
프리드리히 반 드 라누트(28) 씨는 이민하는 쪽과 이민을 받아들이는 쪽 모두 정체성을 잃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학에서 범죄학을 공부한다는 옌스 데릭케(25) 씨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정체성 속에서 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즉, 유럽을 떠나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경찰이나 법무부에서 일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집회 참가자는 특히 이슬람 이민자 유입을 큰 문제로 꼽았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온 로버트 스캄프(44)씨 한쪽 손에는 “이슬람화를 막아라”라는 데칼 문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토론 참가자끼리 서로 견해가 엇갈리는 풍경도 보였습니다. 백인 우월주의 성향이 강한 플랑드르 지방이 벨기에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토미슬라프 수니치는 ‘소아적 민족주의’를 반대한다며 유럽인은 유럽 문화를 지키기 위해 더 크게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그는 알렉산더 두긴의 유라시아 구상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이다”라며 비판했습니다.
수니치는 최근 가톨릭 교회가 난민을 무제한 수용할 것을 지지하는 걸 두고 가톨릭을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럽 몰락의 진짜 장본인은 자본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업이 저렴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다른 강연자 제라드 테일러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먼저 사랑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만 비유럽 외국인이나 다른 인종을 존중해 줄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유럽인”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우리’의 범주에 미국 백인도 포함했습니다.
그는 “우리 유럽인”이 위대한 문명을 건설한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며 “우리 안에 각인된 유전자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테일러는 인종 차이란 현실이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해롭다고 했습니다. 미국과 서구 유럽 정부가 이민을 받아들여 “문명의 유전적 기반”을 희석하는 걸 ‘자기 파괴’라고 개탄했습니다. 그는 아직 남은 백인 유전자와 백인 문화가 유럽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헝가리가 이민자를 거의 받지 않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강연 끝에 거의 눈물을 글썽이며 “유럽 형제애”를 외치자 청중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답했습니다.
이날 집회가 끝날 때까지 경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