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가 진정한 근대국가로 거듭나려면?
10월 4일은 터키 최대의 명절 쿠르반 바이람의 첫 날입니다. 쿠르반 바이람의 전통 중 하나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했던 아브라함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양이나 소를 직접 도살한 후, 고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신심이 깊은 이슬람교 교인들에게 소중한 전통이지만, 서구의 영향을 받은 터키의 엘리트들은 이 전통이 야만적이라며 매도해왔습니다. 서구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 엘리트 세속주의자들은 아이들까지 지켜보는 앞에서 자행되는 잔인한 불법 도살이 진정한 근대 국가로 거듭나려는 터키에 방해가 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터키에서는 ‘무슬림 대 세속주의자’라는 기본적인 대립 외에도 도살 전통을 둘러싼 담론이 아주 복잡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소수의 젊은 리버럴들은 극단적인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도살 전통을 옹호합니다. 육식에는 응당 도살이 수반되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것이죠. 한편 동물 애호가들은 동물 권리의 입장에서 잔인한 전통에 반대하면서도, 세속주의자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투우와 미국의 추수감사절도 동시에 공격합니다. 건강과 웰빙을 내세우며 전통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할랄 방식의 도축이 동물에게도 훨씬 덜 잔인하고, 그렇게 잡은 고기가 맛도 더 좋다는 주장이죠. 자선 사업을 내세워 전통을 되살리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최근 터키 정부와 이슬람교 계열의 자선 단체들은 명절에 도축한 고기를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가난한 나라를 도와줄 정도로 부유해졌다는 자부심을 다지는 계기로 삼고, 여전히 가난한 일반 시민들에게는 자신도 국가적 경제 성공 스토리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슬람식 전통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는 전략은 터키 정부가 예전부터 구사해온 것입니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당시 신설한 항공국에 명절 도살로 잡은 동물의 가죽을 수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전통에 의해 생산된 가죽이 최첨단 항공기를 사는데 쓰이게 되면서, 전통에 새로운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죠. 터키의 근대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논란도 커졌습니다. 50년 전, 대부분의 터키인들이 농업에 종사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동물을 깨끗하게 도살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반쯤 죽은 동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깨끗한 도시의 길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더 충격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고, 세속주의자들은 더욱 분개합니다.
명절 전통을 둘러산 논쟁은 오늘날 터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 전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실한 무슬림과 세속주의적 힙스터 모두 ‘근대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의 이념적 거리는 미국에서 남북전쟁 재연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링컨: 뱀파이어헌터>를 즐기는 팬들과의 거리와 비슷합니다. 터키는 수십 년에 걸쳐 근대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겨우 크고 반듯한 건물들을 세워놨더니 서구로부터 ‘전통을 잘 보존하는 것이 근대 국가의 진정한 책무’라는 말을 듣는 아픈 시절도 겪었죠. 터키의 지도자들은 부와 힘을 쌓아 ‘근대성’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입지에 오르는 것이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 에르도안 정부도 ‘근대성’이라는 명분으로 보수주의적, 권위주의적 면모를 교묘하게 포장해 왔죠. 그러나 오늘날 국내외에서 터키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에르도안 정부도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에르도안 정부는 이슬람교의 가치와 서구의 민주주의가 양립 가능하고 주장해왔고, 덕분에 각종 ‘근대적’ 정책을 밀어 붙이면서도 보수적인 종교 세력의 지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주장대로 이슬람교의 가치와 민주주의가 실제로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 결과 오늘날 터키 정부는 명절에 전통대로 양을 도살할 권리만큼이나 표현의 자유도 누리고 싶어하는 무슬림 민주주의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명절에 양을 잡는 행위에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터키도 스스로를 진정한 ‘근대 국가’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Foreign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