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를 보는 영국의 위선 혹은 배신
2014년 10월 1일  |  By:   |  세계  |  No Comment

마지막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1984년 중국은 영국과 홍콩 반환 조약을 맺으며 홍콩에 폭넓은 자치권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홍콩 시민은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중국이 조약을 파기한 것에 대해 어떤 가벼운 비판조차 내비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콩 시민은 홍콩행정장관(홍콩 자치정부 최고책임자)을 자유 보통 선거로 뽑기를 바랍니다. 그 희망은 한 달 전만 해도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물거품이 됐습니다. 9월23일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1주일간 동맹 휴업에 돌입하고 민주화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중화 대학 설문 결과 홍콩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이민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홍콩의 불안한 미래 때문입니다.

이 모든 혼돈이 지난 8월말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계획에서 시작했습니다. 그건 홍콩 시민이 보기에 너무나 반민주적인 선거였습니다. 중국 정부 지지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지지를 받은 사람만이 후보자로 출마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선거 방식이 어떻게 됐든 간에 직접 선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일보한 제도라고 반박합니다. 1984년 영-중 공동선언은 민주화를 명백하게 약속하지 않았고 사실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 5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 선거를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영국 정부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지난 9월2일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은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영국은 홍콩 문제에 목소리를 낼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9월 15일 영국 주재 중국 대사 류 샤오밍은 <데일레 텔레그래프> 기고문을 통해 “가장 야비한 위선”이라고 꼬집었습니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기 오래전부터 민주화 확대 요구는 홍콩 사회에서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1984년 영-중 공동선언의 자치 약속에 따라 1985년 초 홍콩 시민과 중국 정부 관료들은 함께 위원회를 구성해 기본법(香港基本法)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홍콩-마카오 반환 문제 최고 책임자였던 루핑(魯平)은 1993년 3월 <인민일보>에 “미래에 홍콩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킬지는 전적으로 홍콩 자치권의 범위 안에 있다. 중앙정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약속은 깨졌습니다. 2004년 중국 정부는 홍콩기본법을 재해석했습니다. 중앙 정부 승인 없이는 홍콩이 정치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지난달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발표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은 이란 대통령 선거와 흡사합니다. 중국 정권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아예 후보자가 될 수 없게 했습니다.

영-중 공동성명 당사국인 영국은 중국이 약속을 위반한 점을 법적으로 따져 항의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입니다. 영국 정부 반응은 어땠을까요? 지난 나흘 동안 영국 외무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 뒤 마침내 나온 성명을 보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더 나았겠다 싶습니다: “중국의 목표가 홍콩 행정장관 선출을 보통 선거를 통해 이루려는 것임을 확인하고 환영한다.” 홍콩 민주 시위대에서 용맹스럽게 싸우고 있는 마틴 리 씨는 영국 정부의 태도를 “가롯 유다가 예수를 은전 30닢에 팔고 굽실거리는 짓”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영국이 홍콩 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정부의 국수주의에 가까운 엄포는 중국이 여전히 영토 주권을 방어하기 위해 영국의 원칙적인 성명조차 우려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중국 언론은 민주화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외국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고 있다는 보도를 일상적으로 내놓습니다. (사실 홍콩 관변 단체에 돈을 대는 게 중국 정부입니다.)

30년 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로 했을 때, 마거릿 대처 총리는 그 결정을 옹호하는 근거로 영국은 꼭 중국이 조약을 지키게 할 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후세대가 지켜내지 못한 대처리즘의 유산이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출처: 월스트리트저널 9월23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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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번역을 추천한 사람: 김낙호(미디어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