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소득보전세제: 미국인 3천만 명이 정부로부터 받는 연말정산 보너스
2014년 8월 18일  |  By:   |  경제  |  No Comment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든 납세자들은 세금을 달가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현재 3천만 명 가까운 사람이 세금 내는 날(매년 4월 15일로 한국으로 치면 연말 정산 기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신기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에게 일을 해 번 소득에 비례해 소득세를 감면해주고 일종의 장려금까지 정부가 지급하는 근로소득보전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는데도 여전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일정 수준까지는 정부가 보너스를 주는 겁니다. 자녀가 있을 경우 장려금 액수는 더 늘어납니다. 많게는 연간 소득의 1/3 가량을 지원해주는데, 뉴욕에 사는 오초아 씨가 시간제로 일하고 연간 받는 900만 원 가량의 근로소득에 정부가 300만 원을 세금 내는 날 얹어주는 식입니다. 지난해의 경우 총 60조 원 가량의 돈이 이 제도를 통해 빈곤층에 지원됐는데, 결국 정부가 세수를 다시 지급하는 셈이기 때문에 부유한 계층에서 빈곤층으로 부가 이전되는 재분배 효과도 있습니다.

근로소득보전세제는 미국에서 1975년 처음 도입된 이래 공화당, 민주당, 좌우를 막론하고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확대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일해서 번 만큼에 비례해 지원 액수를 결정하도록 한 점입니다. 쉽게 말해 빈곤층에게 지급되는 식료품 구매권(Food Stamp)이나 집세 보전비용은 사람들이 일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지원이 끊깁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제도가 결과적으로 이들을 가난에 머무르게 하고 있는 셈인데, 근로보전소득세제는 정 반대입니다.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에서 아예 벗어날 만큼 많은 돈을 벌지 않는 한 많지 않은 소득에 비례해 장려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할 동기를 효과적으로 부여한 겁니다.

앞서 예로 든 오초아 씨의 경우 4년 뒤 연 소득이 1,500만 원으로 늘어났는데, 정부의 장려금도 400만 원으로 함께 늘었습니다. 오초아 씨는 빚도 갚아나가기 시작했고, 아들의 학교도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됐으며, 빈곤층의 상징과도 같은 식료품 구매권을 더는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자활에 성공했습니다. 정부가 돈을 직접 쥐어주며 가난에서 시민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지원은 하되 시민들이 스스로 일을 해 번 소득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것이 이 제도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던 요인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를 정부가 튼튼히 붙잡아준 셈이죠. 오초아 씨는 늘어난 소득과 장려금을 아끼고 아껴 회계를 배우며 보수를 더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얻을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빈곤층에 의식주 등 생필품에 해당하는 물건을 현물로 지원하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현금을 지원한 점입니다. 쉽게 말해 가난한 이들에게 현금을 지원하면 이를 쓸데 없는 데 낭비해버리고 말 거라는 게 음식이나 무상 의료보험을 직접 지급하는 현물 지원 방식을 뒷받침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먹을 게 모자라지 않는데 계속해서 들어오는 식료품 구매권보다 차라리 현금을 주면 어디에 요긴하게 쓸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로소득보전세제의 혜택으로 받은 돈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더 큰 돈으로 불린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보전세제가 가난을 퇴치하는 마법이라고 말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 제도 역시 완벽한 것이 아니라 장려금 지급이 효과적이지 못한 경우도 많고, 갑자기 생긴 뜻밖의 소득을 엄한 데 써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또한 현금 지원이 효과를 거둔 건 식료품 구매권과 같은 현물 지원 방식과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재밌는 사실은 이 제도를 처음 주창한 인물이 빈곤층을 구제하는 데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이라는 점입니다. 프리드먼은 무려 1960년대에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장의 핵심은 지금 근로소득보전세제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현금 지원과 일한 만큼 지원액을 늘려 계속해서 일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 두 가지였습니다. (NPR Planet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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