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랙 스타에서 성소수자 운동의 대변인으로
배우 조지 타케이(George Takei)는 1960년대 TV 시리즈 스타트랙의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제 그는 연기자 대신 조지 타케이라는 인간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성 소수자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케이의 삶을 통해 우리는 미국 정치사와 문화사의 주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의 진주만 습격 후 미국 내 일본인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배우로 자라났으며, 2005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결혼평등법안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2008년에는 오랜 애인과 결혼했습니다. 그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투 비 타케이(To Be Takei)>의 개봉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아래에 타케이와 함께한 인터뷰의 주요 장면들을 소개합니다.
삶 대부분을 벽장 속에서 살아왔는데?
무명 배우였던 시절, 멋진 외모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스타 탭 헌터(Tab Hunter)가 동성애자라는 스캔들 하나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나는 커리어에 대한 야망이 컸기 때문에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일본인 수용소에서의 어린 시절은?
우리는 진주만을 습격한 일본인들과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수용소에 감금된 채 수년을 살았습니다. 총을 든 군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우리 가족을 끌어냈을 때 저는 갓 다섯 살이었죠.
수용소 이후의 삶은?
제가 9살 때 우리 가족은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수용소 안의 삶에 익숙해진 저와 어린 동생들에게 바깥세상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수용소에서 나왔을 때 우리 가족에게는 한 푼도 없었고, 사람들의 증오심은 여전했습니다.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만이 우리를 받아줘서, 아버지는 LA의 중국 식당에 접시닦이로 취직할 수 있었죠.
1960년대 할리우드 배우로 사는 삶은?
당시 아시아계 배우들에게는 고정관념, 그것도 매력적이지 못한 고정관념에 가까운 역할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부끄럽게 할 역할은 맡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역할들은 피했습니다.
스타트랙의 성공에 대하여
1965년에 파일럿 에피소드를 촬영하면서 저는 이 작품이 수작이라는 느낌을 바로 받았습니다. 대본도 좋았고, 배우들도 훌륭했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던 TV 시리즈는 늘 한 시즌 만에 종영되곤 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타트랙은 세 시즌이나 이어졌고, 재방송이 대대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큰 사랑을 받게 되었죠.
성소수자 운동에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데?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저는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끝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TV쇼에 게이 조지 타케이로 까메오 출연을 요청받게 되었죠. 그러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이미 “개종”한, 즉 성소수자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에게만 다가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잖고 좋은 사람들이지만, 사느라고 바빠서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