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사회적 책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사회, 경제, 환경 문제들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데 기업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순진한 생각일까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미국의 기업은 앞장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914년 당시 미국의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였던 포드사의 수장 헨리 포드(Henry Ford)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단번에 두 배나 올렸습니다. 기업과 국가 경제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1929년,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 Company)사의 노동자들은 사회보장제도와 노동법이 제대로 갖춰지기 이전부터 이익 배분과 퇴직금, 연금, 보험 혜택 등을 누렸죠.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업 문화와 대면합니다. 복지, 윤리, 인권 등 폭넓은 쟁점을 아우르던 기업들의 사회적 책무는 그 범위가 현격히 축소되어 오늘날에는 주주의 이익 실현에만 국한되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클레어몬트 대학의 드루커 연구소(Drucker Institute at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 수장 릭 와츠만(Rick Wartzman)은 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간의 시기는 미국 기업들의 윤리의식이 ‘주주 우선주의’로 귀결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죠.
이처럼 기업 문화가 변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은 44년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사설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이익을 창출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인들에게는 그들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가를 극대화할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경영자들이 기업의 이익 실현 외에 다른 목적으로 지출을 감행하는 것은 타인의 돈(주주들의 돈)으로 자선행위를 벌이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프리드만의 이 같은 발언은 주가에 무관심한 경영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주주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되는 사례가 빈번했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프리드만의 주장은 경영대학의 교육지침은 물론 기업의 이사회 의결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대다수 기업인들은 기업을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으로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로 대표되었던 1970~80년대의 침울한 미국의 경제 상황은 이러한 기업인들의 인식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같은 시기 경제 부분에서 일어났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들 간의 무한 경쟁 구도를 촉발했고,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단기 이익률 신장에 사활을 걸게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남은 것은 수익성에 대한 맹종뿐이었죠.
그렇다면, 돈만 좇는 오늘날의 기업 문화를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무를 다하길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다행스럽게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몇몇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러한 문제 의식에 동조하는 기업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엔이 제시하는 인권 및 노동자의 권리 보호, 환경에의 책무, 부정부패 척결에 관한 세계 표준을 따르겠다는 협약에 서명한 기업의 수는 2000년에는 44개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총 7,717개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친환경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 기업의 장기적인 성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보시대를 맞아 기업의 경영 활동 정보가 주주는 물론 소비자 및 피고용인들에게까지 투명하게 공개되면서 윤리 경영에 대한 압력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업윤리가 당분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13년 전 터진 엔론(Enron)사의 분식회계 사건만 보더라도 윤리 경영에 대한 외부 압력은 그 한계를 스스로 드러낸 측면이 있습니다. 엔론의 경영진들은 회계를 조작하여 엄청난 양의 배당금과 인센티브, 비자금을 챙기면서도 보이는 곳에서는 활발하게 자선활동까지 펼치면서 주주들과 소비자들에게 윤리경영을 강조했죠. 이처럼 외압은 얼마든지 우회가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기업들이 스스로 변화하길 기대하는 것 또한 상당히 비현실적입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사회적 책무를 완수하는 데 앞장섰던 과거 기업들 또한 사회선을 추구하겠다는 순수한 선의보다 사리 추구에 더 큰 목적이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포드사의 임금 상승 조치는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구매력을 높여 자사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트만 코닥사가 제공했던 진보적인 사회보장정책은 노동조합원들을 특정 지역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다분했고요.
이런 관점에서 밴더빌트 법과대학(Vanderbilt Law School)의 마가렛 블래어(Margaret Blair) 교수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블레어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업의 자발적인 행동에만 의지하기에는 기업들의 ‘주주 우선주의’ 기조가 너무나 공고하다고 지적했습니다.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