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을 싫어할까요?
최근 한 심리학 실험은 사람들이 얼마나 홀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지 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기기 보다는 차라리 전기충격을 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관련 뉴스페퍼민트 기사) 이 실험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사람들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욕구를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일 겁니다. 의자에 앉아 생각하기를 요구받았을 때, 남자들의 2/3와 여자들의 1/4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에게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생각은 인간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홀로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다면, 사람들은 실제로 훨씬 자주 생각에 빠질 겁니다. 인간이 이런 고독을 피할 수 있는 문명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사람들이 이를 좋아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비행기 좌석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것, 기차역에 서점이 있는 것, 그리고 영국의 집집마다 평균 6개의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와 1.83개의 텔레비전이 있고, 사람들이 하루 평균 4시간씩 텔레비전을 보는 것 모두 사람들이 홀로 생각하기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아무런 체계 없이 끝없이 생각하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박하 요구르트를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에서 시작해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 살을 전기톱으로 잘라내는 상상에 이를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억지로 막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면 결국 분통이 터지고 말 겁니다. 어느 경우든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되며 우리 머릿속의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이들은 이런 과정을 극단까지 경험하는 이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다른 행동들을 합니다. 과거 우리는 농사, 바느질, 섹스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날 당신이 하버드의 실험대상이 된다면, 당신은 고맙게도 전기충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생각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을까요? 이제 구식이 된 정신분석학의 설명을 따르자면 (정신분석학은 어쩌면 오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스마트폰 때문’이라는 단순한 주장보다는 더 괜찮은 설명을 제시합니다) 문명이란 결국 우리의 탐욕과 공격성이라는 본능을 제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거대하고 질서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본능을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거나 무언가를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며, 끊임없이 자신을 자제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나눌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이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버스에서 자리에 앉을 생각을 영원히 잊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선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당신이 느끼는 시기심은 어떨까요?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고 싶다면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은 어떤가요? (당신만 그럴까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낄 겁니다.) 세상이 이런 가짜 쓰레기 투성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랐던 마음은요? 당신은 어떤 생각까지 하게 되나요? 그걸 알고 싶다면 바느질을, 섹스를, 스마트폰 바라보기를 그만 두면 됩니다.
자신이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고 싶다면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괜찮은 인간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에게 가만히 앉아 생각하기를 권한다면, 그 사람이 당신에게 줄 전기충격기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좋을 겁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