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영화 한 편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지난주 내내 서구 언론들은 북한 김정은 제1비서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 <더 인터뷰(The Interview)>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다루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BBC와 NPR,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이 영화에 반발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했다는 제목을 달아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뉴욕타임스는 “무자비한 전쟁”, 허핑턴포스트는 “전면전”이라는 단어를 썼고, ABC는 아예 “세스 로건과 제임스 프랑코의 새 영화가 전쟁을 일으키나?”라는 제목을 달았죠.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이 영화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유튜브에 영화 예고편이 공개된 후, 북한 외무성이 반응을 내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조선중앙통신이 이 소식을 전했죠. 외무성 성명에 “전쟁”이라는 단어는 딱 한 번 등장합니다. 이런 영화의 개봉이 테러나 전쟁과 다를 바 없어 용인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에서죠. 북한 언론을 자주 접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북한은 원래 미국이나 한국이 하는 일이 평양에 대한 전쟁 선포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무슨 짓을 하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표현도 자주 쓰고요. 하지만 이 두 가지 표현은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 관련 성명에 등장한 표현은 전자죠. 북한을 스스로 미국이 행한 “전쟁 행위”의 피해자로 두는 표현이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협박이 아닙니다.
사실 이 성명의 대부분은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충성 맹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충성 맹세 뒤에는 최고 지도자를 해치거나 공격하려는 자들을 자비 없이 공격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다행히 <더 인터뷰> 제작 과정에서 김정은을 해치거나 공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 뒤에 최고 지도자를 “모독”하는 자들에게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대목이 나오기는 합니다. <더 인터뷰>의 내용은 아마도 북한이 보기에 “모독”에 해당할 테지만, 북한이 예고한 것은 “단호한 응징”이 전부입니다. 백번 양보해 최고 지도자 모독으로 사형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세스 로건이나 제임스 프랑코가 북한에 들어가 북한법의 적용을 받을 일은 없죠. 성명의 마지막 부분은 아마도 전쟁 협박에 가장 가까운 대목이 되겠지만, “영화 상영을 묵인한다면 단호하고 무자비한 대응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는 정도입니다. “단호”, “무자비” 등의 표현이 북한의 성명에서 상투적으로 늘 쓰이는 형용사인 건 둘째 치고, “대응” 조치라 함은 말 그대로 “원(original)” 조치에 대한 “대응”이니, 오바마 대통령을 암살하는 내용의 선전 영화를 제작하는 정도를 뜻한 거라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김 씨 집안은 대대로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한다고 알려졌습니다. 북한 당국도 오바마 대통령이나 정부가 영화 개봉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 쯤은 당연히 알고 있겠죠. 이번 사태를 다룬 서구 언론의 기사가 모두 터무니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내용을 뜯어보면 북한이 실제로 전쟁을 하겠다고 협박한 게 아니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헤드라인을 접한 독자들은 북한이 영화 한 편 때문에 선전포고라도 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전면전” 같은 표현은 그야말로 없는 말을 지어낸 것에 불과하고, 실제 등장하는 “전쟁 행위”라는 표현도 맥락에 맞지 않게 인용 보도한 매체가 여럿입니다. 북한이 좋아하는 극단적인 형용사를 엉뚱한 명사에 붙여 보다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어낸 곳도 많았죠. 그러니 <더 인터뷰>의 제작진 여러분은 영화 때문에 북한과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접어두셔도 되겠습니다. (The Diplom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