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숙학교는 나쁜 지도자를 배출할까요?
2014년 6월 26일  |  By:   |  세계, 칼럼  |  2 Comments

영국에서 출세하려면 명문 사립 기숙학교(보딩스쿨)를 졸업해야 한다는 건 오래된 상식입니다. 영국 상류층이 꿈꾸는 이상적인 인생이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보딩스쿨을 다닌 뒤 옥스브릿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를 거쳐 법조계나 고위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거죠. 캐머런 총리도 겨우 7살 때 버크셔의 헤더다운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이름난 영국 정치인들이 다 그랬듯, 그도 일찍이 어머니 품을 벗어나 보딩스쿨의 엄격한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습니다. 캐머런처럼 장차 엄청난 권력과 책임을 떠맡게 될 아이들이, 성장기에 겪는 경험이 심리 발달에 끼칠 충격은 상당합니다. 보딩스쿨 출신들이 세상과 교류하는 방법에 익숙지 못한 채 엘리트 문화, 왕따 문화, 여성혐오증 등을 내재화한다면 우리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보딩스쿨 졸업생이자 교사였으며, 25년간 보딩스쿨 졸업자의 정신치료를 해왔습니다. 보딩스쿨 전통이 깊이 뿌리박힌 영국에서 이른바 ‘특권적 버림(privileged abandonment)’이라고 불리는 보딩스쿨에 관한 제 연구는 늘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같은 보딩스쿨 출신 정치 엘리트에게 정신결함이 있다는 뜻이냐고요? 글쎄요. 이건 좀 복잡한 문제입니다.

제 연구는 보딩스쿨 졸업생이 생존을 위해 자기감정을 차단하고 방어적 자아를 발전시킨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 제러미 헌트 보건부 장관, 앤드루 미첼 국제개발부 장관, 올리버 레트인 정무 장관 등이 모두 보딩스쿨에서 살아남은 이들입니다. 평범한 아이가 따뜻한 가정의 품에서 자라는 동안 사회적으로 특별하게 대접받은 이 인간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야 했습니다. 가정, 가족, 사랑, 친밀한 접촉으로부터 일찌감치 고립된 환경 속에서, 보딩스쿨 학생은 자기 의존적인 ‘가짜어른(pseudo-adults)’의 자아를 재빨리 세워야 했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은 적절히 성숙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허락받지 못한 아이는 내부적으로 좌초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왜 많은 영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어린애 같은지를 보여줍니다. 영국 내각의 3분의 2가 보딩스쿨 출신인 상황에서, 이런 병적 증후군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의 몸 안에 어린아이를 품고 있는 자들이 국가의 중책을 떠맡고 있는 셈입니다.

보딩스쿨 학생은 거의 예외 없이 졸업 후에도 ‘생존형 성격’을 오랫동안 지니게 됩니다. 보딩스쿨의 24시간 꽉 짜인 시간표와 엄격한 규율 속에서, 학생들은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늘 타인의 시선을 경계해야 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학생들은 불행하지도, 유치하지도, 바보 같지도 않게 보이도록 애를 씁니다. 이런 부끄러운 면이 자신에게 없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외려 친구에게 화살을 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골만이 이름 붙인 ‘감성지능’을 계발할 기회를 놓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전략을 씁니다. 자기가 바보처럼 비칠 것 같으면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거죠. 캐머런이 총리가 되고 나서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안젤라 이글 의원과 논쟁이 붙었을 때 총리는 “진정하세요. 제발”이라며 마치 화난 사람이 그가 아니라 그녀인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야당 측에서는 “플래시맨”(소설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에 나오는 보딩스쿨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인물)이라고 외치며 놀려댔죠.

24시간 내내 같이 생활하는 보딩스쿨에서 왕따 문화가 퍼지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왕따 문화는 영국 사회, 특히 정치와 미디어 영역에 널린 현상이지만, 보딩스쿨과 마찬가지로 우린 그걸 일상적인 문화라며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딩스쿨에서 생존 전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것이 한 방법이고, 그 밖에 늘 고개를 숙이고 외면한다든지, 귀여운 말더듬이가 된다든지, 또는 과거 카르투지오 스쿨의 학생회장이었던 보건부 장관 제러미 헌트처럼 부조화한 냉정한 웃음을 짓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1994년 BBC의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 <더 메이킹 오브 뎀 The Making of Them>에서 제작진은 보딩스쿨 학생들을 조심스럽게 취재했습니다. 취재진은 ‘생존형 성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9살 난 학생 프레디는 어른을 흉내낸 거만하고 심각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보딩스쿨이 저를 바꿨습니다. 이제 전 여기 적응해야죠”라고 말합니다. 가짜 어른을 흉내내는 것이죠. 캐머런이나 토니 블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생존을 위한 연극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익힌 이중인격은 없애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슬프게도 자기 자신마저도 기만합니다.

제가 “이성적 인간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빅토리아식 보딩스쿨 교육은 과거 대영제국 시절 금욕적이고 우월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산업적 교육 방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최근 정신과학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의 리더십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감성이 없이는 리더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없고(안토니오 다마시오 교수), 바람직한 애정이 없이는 뇌를 유연하게 성장시킬 수 없으며(슈 게르하르트 박사), 마음을 닫아왔다면 타인의 표정 신호를 해석할 수 없고(스티븐 포지 교수), 지나치게 절제된 이성적 교육만 받았다면 세상의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습니다(레인 맥길크리스트 박사). 이러한 지적들은 “토리당의 정치적 결정들은 수 세기 동안 지속해서 틀려왔다”는 윌 허튼의 견해를 지지합니다.

생존 지향적이지만 공감 지향적이지는 않은 학교 교육을 7살 때부터 받아온 데이비드 캐머런은 외교 문제에서 존 메이저 전 총리라면 가능했을 바른 결정을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는 유럽을 이끌자는 말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속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보딩스쿨 출신들은 화합의 해답을 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보수당 우익의 지지를 높이기 위해, 캐머런은 유럽 국가들과 협상하기보다는 강경한 원칙을 내세우곤 합니다. 캐머런의 맞상대인 유럽 지도자들은 이런 식으로 정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다양한 정당들이 모인 느슨한 연합정부를 잘 이끌고 있습니다. 그녀가 인화력과 협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에 크렘린으로 들어가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군축협정의 진척을 보였습니다. 협정을 맺기 전에 오바마는 숨은 실력자 블라디미르 푸틴과 오랜 시간 대화하며 양국의 이해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영국 정치인들은 엘리트 교육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엘리트 교육 때문에 이런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임상의사가 보딩스쿨 증후군을 우려하고 있고, 그중 몇 명은 최근 <디 옵저버>지에 보딩스쿨을 철폐하자는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과거 애틀리 정부(1945~1951)가 이런 귀족학교를 해체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죠. 여기에는 돈 문제가 있습니다. 보딩스쿨 산업은 수십억 파운드 규모에 달하고 엄청난 로비가 오갑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영국은 사립학교 시스템을 해체하지 못했고, 여전히 사립 학교는 비영리재단의 지위를 누리며 값비싼 학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류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일을 언제까지 감내할 수 있을까요?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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