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대 종교, 어떤 자유가 우선인가?
개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둘 중 어떤 것이 앞서야 할까요?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최근 한 판결에서 종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판결이 종교의 자유가 아닌 종교 집단의 자유를 옹호한 판결이며, 개인의 종교적, 윤리적 선택권을 무시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따르고 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 페르난데스 마티네스(José Antonio Fernández Martínez) 씨는 지난 1961년 사제 서품을 받고 23년간 가톨릭 성직자로 살다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후 국립학교에서 윤리학과 종교를 가르치며 가정을 꾸리고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죠.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1996년, 그가 가족과 함께 “선택적 독신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Optional Celibacy)”이라는 진보적 종교단체 모임에 참석한 사진이 찍히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바티칸은 뒤늦게 그를 콕 집어 공식적으로 제명하고, 강단에도 설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는 결국 일자리를 잃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죠. 그는 교회의 결정이 “모두가 사적, 가정 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의 유럽인권협약 8조에 어긋난다며 유럽인권재판소를 찾았지만, 재판소는 결국 9대 8로 교회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교회의 일원은 교회 내부의 규칙을 따라야 하며 국가는 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종교적 보수주의를 그대로 따른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교회의 “징계”가 특정 모임에 참여한다는 개인적인 선택에 가해진 것이며, 국가가 교사의 채용을 교회에 하청 형식으로 맡겼다 하더라도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아주 세속적인 국가라도 종교 집단의 자율성은 널리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정에는 종교 집단의 규칙과 하위문화가 다른 집단과의 관계에서 부적절하게 두드러지지 않고, 구성원들의 참여가 전적으로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습니다. 그러나 호세 안토니오 페르난디스 마티네스가 맞선 상대는 역사상 엄청난 권력을 누려온 스페인의 가톨릭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교사의 채용 등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판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