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 도시의 익명성
2014년 4월 29일  |  By:   |  IT, 과학  |  2 Comments

도시는 익명성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 속에서 이웃이 누구인지,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뭘 좋아하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붐비는 인파 속의 한 사람일 뿐이니까요. 혹자는 이러한 도시의 익명성을 비인간적인 것, 냉정하고 참혹한 것이라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익명성이 없었다면 당신의 사생활 역시 보호받기 힘들었을 겁니다.

기술의 도약으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데이터 수집 능력은 이러한 도시의 익명성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사생활을 보호하는 장벽에도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죠.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날 지켜보고 있는 감시 카메라 한대쯤은 쉽게 발견할 수 있고, 카메라가 없는 지역에서도 하늘을 떠다니는 위성들은 지상을 향한 감시망을 촘촘하게 유지합니다.

감시자의 시선만이 사생활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데 모아 의미있는 정보로 새롭게 가공하는 빅데이터 처리 기술 역시 우리의 사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로코모비(LocoMobi)는 차량등록번호판을 인식하는 기술을 보유한 캐나다의 한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이 기술을 구현하는 기기를 설치하여 입출입하는 모든 차량을 시간별로 관리하고 자동으로 요금을 정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로코모비의 계획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차량의 입출입 데이터를 네비게이션 시스템과 연동하여 주변 운전자들에게 빈주차공간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서비스를 시작하려 했던 것이었죠.

이 사실만 놓고 보면 데이터 수집이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공익에 도움이 되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사실을 추가하는 순간 데이터 수집의 의미는 180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가령, 경쟁관계에 있는 두 상점의 주차장에서 차량의 입출입 데이터가 모두 수집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한 상점의 주인이 홍길동이란 운전자가 평소보다 경쟁 상점에 더 많이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죠. 이 상점의 주인은 그간 축적된 입출입 데이터를 이용하여 각종 개인화된 유인책을 동원하여 홍길동을 다시 자신의 상점으로 끌어들일 방안을 구상할 겁니다. 이쯤되면, 홍길동씨는 더이상 익명의 자아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반경이 드러난 실체적 자아가 되버리고 말죠.

아마존에서 물건을 검색하는 행위에서도, 무심코 긁는 카드의 지불 내역을 통해서도, 심지어 아이폰에 동기화된 드롭박스 폴더를 통해서도 우리의 사생활은 빅데이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실존한다는 사실보다 대중들이 이러한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새롭게 개정된 서비스 조건에서 구글은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스캔하겠다는 내용을 소비자들에게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조건의 개정으로 떨어져나간 구글의 사용자수는 거의 없다시피 했죠.

혹자는 이러한 정보 수집을 통해 인류가 진실에 더욱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빅데이터를 통해 이전까지 감행된 많은 부정을 교정하고 자원의 낭비를 방지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항변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나누지 않는다면, 이러한 장점들은 빈껍데기로 전락할 뿐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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