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개골 절도(Cranioklepty)
작곡가 하이든은 1809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에서의 평화는 길지 않았습니다. 그의 친구 조셉 칼 로젠바움은 그가 무덤에 묻힌 지 5일 뒤, 그의 머리를 시체에서 떼어내 가져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악취가 너무 심해 토악질을 할 뻔 했다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국은 11년 뒤 하이든의 시체를 이장할 때에서야 그의 머리가 도난당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머리를 도난당한 것은 하이든만이 아닙니다. 모짜르트가 공동묘지에 묻힐 때, 교구 목사는 그를 쉽게 찾기 위해 그의 목에 끈을 매어놓았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머리는 그가 묻힌 1828년에서 그가 발굴된 1898년 사이 어느 시점에 도난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19세기 한 때에,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두개골을 통해 이해하려는 욕망으로 이 특이한 절도 행위에 집착했습니다.
콜린 디키의 “두개골 절도: 천재를 도굴하다(Cranioklepty: Grave Robbing and the Search for Genius)”는 당시 사람들이 인간의 두개골과 신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는 이 현상이 같은 시기에 유행한 두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골상학(phrenology)입니다. 1790년대 초반, 프란츠 조셉 갈은 한 사람의 두개골을 관찰함으로써 그의 뇌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논리는 곧 뇌의 각 부분은 다른 일을 하며 따라서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그 뇌의 각 부분이 성장하고 수축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뇌를 관찰하는 것 만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종교적이었는지, 화를 잘 내었는지, 집중력이 뛰어났는지 등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 새롭게 떠오른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바로 천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그 시기 이전에는 천재성이란 구체적인 기술을 의미했습니다. 곧 셰익스피어와 같은 이도 자신의 작업을 어떤 가르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의 결과로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재성을 숙달된 기술로 생각했고, 따라서 기술이나 작품을 이해함으로써 천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의 철학자들은 천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셰익스피어가 가진 천재성을 무형의,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엇으로 보았습니다. 곧 “줄리어스 시저”를 읽거나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을 조사하는 것만으로 그들의 천재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예술분야의 탁월한 이들의 두개골을 검사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그들의 천재성을 찾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로젠바움에게 하이든의 두개골은 하이든의 천재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류를 위해 진정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골상학이 인기를 잃고 뇌를 직접 보존할 수 있게 되자 두개골 절도라는 유행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두개골 대신 뇌에 대해 같은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뇌 역시 도난당한 적이 있으며, 기억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가능하게 했던 H.M의 뇌는 연구를 위해 수천장의 얇은 막으로 잘려 저장되었습니다.
“골상학이 뇌과학으로 바뀌면서 두개골 대신 뇌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Nauti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