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단말, 글로벌 화폐
저는 최근 청구서를 아이폰으로 지불했습니다. 앱이나 모바일 뱅킹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애플의 아이폰 단말을 화폐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시작은 작년 12월 뉴욕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용역서비스는 싸고 IT 기기는 비싼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출시된 아이폰5s는 $1,130 정도합니다. 미국에서 사면 세금을 포함해도 $815 정도지요. $1,130면 이탈리아 노인 간병인의 한 달 월급 정도 됩니다. 저희 집에서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제가 미국에 출장간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월급 대신 아이폰을 사다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며칠 후 저는 뉴욕 5번가 애플스토어에 줄 서 있었고, 금색 아이폰 5s를 주문했습니다. 세일즈맨이 놀란 표정으로 묻더군요. “딱 하나요?” 그는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이 사재기를 해간다며 금색 모델이라면 유럽에서 비싼 값에 되팔기도 쉬울 거라고 조언해줬습니다. 제 옆에 서있던 사우디아라비아 여행객은 그날 네 개째를 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도 아이폰이 금괴라는 걸 깨닫고, 결국 단말 하나를 더 샀습니다.
이는 몇 년 전 아시아 사람들이 파리에 가서 루이비통이나 구찌 핸드백을 사재기하던 것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같은 물건의 가격이 지역에 따라,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보니 차익거래(Arbitrage)가 가능한 거죠. 당시 핸드백을 산 아시아인들은 비행기값을 내고도 이득을 보았습니다. 1990년대 초에는 동유럽에서 리바이스 청바지가 같은 역할을 했죠.
아이폰 수리업자인 카일 위엔은 멕시코에 갔을 때 비슷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아이폰 가격이 16% 높은데, 미국 가격에 팔면 공짜 보트여행을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었던 거죠. 런던의 애플스토어에는 늘 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줄서있습니다. “여기서 아이폰 두 개를 산 인도인들은 인도 왕복 비행기값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애플의 CEO 팀쿡도 국가별 다른 가격 정책을 남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지난 분기 중국 매출이 14% 감소하자 홍콩에 갔던 여행객과 재판매업자가 주요 원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48개국의 아이폰 5s 가격을 비교해보면 미국에서 가장 싸게 $700에 살 수 있고 브라질에서 가장 비싼 $1,200에 되팔 수 있습니다.
저는 이탈리아에 돌아와 아이폰으로 집안일 용역비를 지불했고, 추가로 샀던 단말도 쉽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 LA 여행 때 또 애플 스토어를 기웃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했지요. 세일즈맨이 또 물었습니다. “한 개만 사신다구요?”
지금 제가 보기엔 아이폰5s가 떠오르는 새로운 화폐 비트코인보다 훨씬 안정적인 글로벌 화폐입니다. (Business W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