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랜드에서 경제학 토론을: 경제학자의 북한 여행기
북한 여행에서 우연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는 관광 프로그램 속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평범한 북한 주민을 만날 기회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평범한 북한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외부 세계의 선입견과는 다른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난 3월 말, 싱가포르의 대북 교류단체인 “조선 교류“의 주선으로 북한에서 성사된 북한 재무부와 중앙은행 직원들과의 만남에서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가 주도 경제의 역군들이 나의 관점에 딴지를 걸어올 것이라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들을 만났지만, 이들의 첫 인상은 무엇보다도 정보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제 성장과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지, 이상적인 인플레율은 얼마인지, 구체적인 숫자와 예시를 요구하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왔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런 정보를 얼마든지 검색해볼 수 있다는 나의 대답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경제학 이론에 있어서는 모두들 탄탄한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비판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날에는 가상의 나라 “파라다이스랜드”를 만들어 북한 경제의 문제점들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나는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통화 위기와 높은 인플레, 부실한 국영 산업, 이웃 나라와의 관계 악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파라다이스랜드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을 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조별 토의를 거쳐 나온 아이디어들은 IMF에 제출해도 합격점을 받을만큼 훌륭한 답안이었습니다. 산업 민영화, 경쟁을 통한 효율성 증진, 원자재에 부가가치를 더해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투자 유치 등 다양한 해결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참석자는 나에게 “직접 나라를 운영하는게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 줄 몰랐다”고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내가 세미나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북한 사회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는 엘리트들이었겠지만, 성장은 더디고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사회에서 엘리트들의 상황도 썩 좋아보이지 않았습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추운 방에서 세미나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실내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만 개인용 난로가 제공되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한 여성이 나에게 따뜻한 차를 갖다주며 외투를 입고 있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소한 교류는 더욱 크게 와닿았습니다. 소외된 고립국 북한과의 관계에서 사람 대 사람의 만남과 교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던 시간이었습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