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의 미래, 태평양 동맹 vs 메르코수르
“개방형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는 1990년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주체가 돼 설립한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의 모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미를 강타한 좌파 바람 속에 많은 좌파 지도자들은 시장이 주도하는 자유무역형 경제정책 대신 정부가 관리하는 자립형 경제정책을 택했습니다. 메르코수르는 점점 경제협력보다는 정치적인 동지애를 더 중시하는 공동체로 바뀌어왔고, 이는 지난해 좌파 대통령 페르난도 루고를 탄핵한 파라과이의 회원국 지위를 박탈하는 대신 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베네수엘라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분명해졌습니다.
현지시각으로 오늘(23일) 칠레와 콜롬비아, 멕시코, 페루 네 나라 정상은 서로 무역하는 상품의 90%에 붙던 관세를 철폐하는 규정에 서명할 예정입니다. “태평양 동맹(Pacific Alliance)”이라 불리는 이들 나라들은 나머지 10% 상품에 대한 관세도 앞으로 7년 안에 완전 철폐할 예정입니다. 코스타리카와 파나마가 회원국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고, 캐나다와 스페인 정부는 참관국 지위를 갖게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태평양 동맹은 어느덧 개방형 지역주의를 직접 실천에 옮기며 라틴아메리카 역내 협력의 새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시장경제와 자유무역, 미국, EU와의 FTA를 도입한 네 나라의 경제규모를 합하면 GDP 2조 달러로 전체 라틴아메리카 GDP의 35%이자 브라질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 중남미 라틴아메리카의 역내무역 규모는 이들 나라 전체 무역의 27%로 유럽 63%, 아시아 52%에 비하면 굉장히 낮습니다. 아르헨티나나 베네수엘라는 경제성장이 더딘 상황에서도 시장을 개방하는 대신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라질산 상품과 서비스를 사들이며 자립경제를 외치고 있습니다. 메르코수르가 라틴아메리카 외에 무역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팔레스티인 뿐입니다. 사실상 닫혀 있는 역내 경제공동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태평양 동맹에 속한 나라들과 메르코수르 국가들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뚜렷하게 다른 정치 색깔과 경제정책 기조는 두 블록에 속한 나라들의 앞날에 엄청난 차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