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등장으로 달라진 한국의 은행업계
2019년 5월 27일  |  By:   |  경제, 한국  |  No Comment

서울에 사는 25세 학생 유 씨에게 “은행일을 어디서 보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간단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죠. 알고보니 그는 금융 기관 세 곳에 계좌를 여섯 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곳은 장학금을 주는 기관에서 추천한 은행이고, 다른 한 군데는 군복무 중 군인에게 여러 혜택을 주는 곳, 마지막은 현재 아르바이트 고용주가 월급 통장으로 지정한 은행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휴면 계좌도 여럿이고, 카드는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혜택만을 위해 발급받은 카드도 있습니다. “영업사원이 일터로 찾아와서 한 달에 30만원만 쓰면 10만원을 돌려준다고 하더라구요.”

한국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성인의 평균 보유 계좌수는 5.2개, 신용카드는 3.6개입니다. 금융 상품이 자신과 잘 맞거나 기관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서 선택하는 경우보다는 인맥 때문에 선택하는 일이 많습니다. 신용카드는 프리랜스 영업사원들이 인맥을 활용해 지인 위주로 발급합니다. 고객 유치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다보니, 한국에서 은행일이란 괴로운 경험입니다. 모바일 뱅킹 앱은 불편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이체를 한 번 하려면 평균적으로 클릭 40회, 4개의 비밀번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변화가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는 현재의 괴로움을 해소해주는 변화이고, 일부는 기존의 서비스를 아예 대체하는 서비스의 등장이죠.

2015년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 금융 기관의 고객 서비스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죠. 가장 눈에 띄는 신규 업체는 ‘비바 리퍼블리카’입니다. 8천만 달러를 유치해 한국의 핀테크 유니콘 1호로 등극했고, 기업 가치는 120억 달러에 달합니다.

‘비바 리퍼블리카’는 2013년 치과의사 출신의 이승건 대표가 설립한 회사로, 디지털 송금 서비스인 ‘토스’를 출범시키기 전부터 여러 벤처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이제 ‘토스’는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 앱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용자가 여러 계좌와 카드, 대출을 한데 모아서 볼 수 있고, 금융 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비바 리퍼블리카’의 빠른 성장은 지금까지 한국의 금융 소비자들에게 은행일이 얼마나 골칫거리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미 한국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천만 고객을 유치했죠. 하지만 이들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인터넷 은행을 설립하고, 한국 금융업계의 “슈퍼 앱”이 되겠다는 것이 이승건 대표의 비전입니다. 기존 은행들은 ‘토스’를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이승건 대표의 설명입니다. 고객 유치 비용을 줄여주는 파트너로 여긴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고객은 ‘토스’가 상대하고 은행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건강한 은행 서비스”을 표방하는 ‘뱅크 샐러드’는 2012년 설립된 핀테크 ‘레이니스트’의 작품으로, ‘토스’보다는 한 곳에 집중하는 접근법을 택했습니다. 현재 가입자는 400만 명으로, 계좌 통합과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결제나 이체 서비스는 빠졌습니다. 김태훈 대표는 ‘뱅크 샐러드’가 한국 금융 업계에서 고객들에게 영화 속 아이언맨의 AI 비서인 자비스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레이니스트’의 강점은 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입니다. 사용자의 소비 패턴에 맞춘 상품을 추천하죠. 이들의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 영업사원이 선물 등을 미끼로 유치한 고객은 한 달에 평균 60만원 정도를 쓰고 평균 4개월 동안 카드를 사용합니다. 반면 ‘뱅크 샐러드’를 통해 가입한 고객은 신용카드 사용액과 사용 기간이 세 배 이상입니다.

‘토스’와 ‘뱅크 샐러드’는 합리적인 고객 유치와 서비스 품질의 새로운 기준 수립, (은행 설립이 통과된다면) 전면적인 경쟁을 통해 한국의 은행 업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또 다른 막강한 경쟁자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94%가 이용하는 채팅앱 카카오톡을 보유한 소셜미디어/모바일 업체 ‘카카오’입니다. 결제 기능을 제공하는 ‘위챗’과 마찬가지로 카카오톡 역시 ‘카카오 페이’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미 2800만 명의 가입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2018년에만 ‘카카오 페이’를 통한 결재액이 17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카카오’는 기존 은행들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카카오’의 모기업을 포함하는 컨소시엄이 국내 최초 인터넷 은행 운영권을 따냈습니다. ‘카카오 뱅크’는 곧장 성공가도를 걸었죠. 13일만에 200만 명이 가입했고, 이제는 고객수가 890만 명에 달합니다. 2위 업체인 K-뱅크의 고객수는 100만 명에 불과합니다. 금융위원회는 비금융기업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허용하고 제 3, 제 4의 인터넷 은행을 인가하는 조치를 고려 중입니다. ‘토스’가 인터넷 은행 설립을 노리고 있죠.

은행들이 전통적으로 안전하고 믿음직하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과 달리, ‘카카오 뱅크’는 즐겁고 재미난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체크카드와 ‘카카오 페이’는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인기있는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의 ‘무지’는 토끼 옷을 입은 단무지(노란 피클 무)이고, 가장 인기있는 ‘라이언’은 둥둥섬의 왕좌를 거부한 착한 사자로 갈기가 없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의식하는 캐릭터입니다.

한국인들이 온전히 카카오 계좌를 통해 금융 생활을 영위하게 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계좌를 다섯 개나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하나를 추가하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 뱅크’에 몰린 사람들은 금융업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차갑고 무뚝뚝한 은행원 대신에 갈기 없는 다정한 사자를 앞세운 브랜드에 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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