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안을 해치는 단톡방에는 발을 끊는 것이 좋습니다. 그 방이 사랑하는 가족끼리 만든 방이라도요.
2019년 2월 22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 이 글을 쓴 엘리자베스 셔먼은 음식, 문화와 관련한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셔먼의 글은 <애틀란틱>, <롤링스톤>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실립니다. 셔먼은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문자메시지를 잘 확인하지 않습니다. 하이톤의 “띠리링” 하는 메시지 알림음이 들리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진동도 아닌 무음 모드로 해놓다 보니, 연락해도 곧바로 답이 안 오는 사람, 연락이 닿기 까다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제게 오는 모든 메시지의 알림음을 싹 다 꺼놓고 싶습니다. 엄마, 아빠를 비롯해 사랑하는 가족,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모든 사람과 끝도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노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지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온종일, 일주일 내내 스마트폰만 붙들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사실 이미 적어도 세 명 이상에게서 오는 메시지 알림음은 꺼놓았습니다. 또 가족이 모두 있는 단톡방에는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이 결정 덕분에 저는 마음의 안정을 찾고 평화를 얻었습니다. 가끔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된 것 같아 외로울 때도 있고, 가족을 귀찮은 존재로 여겼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저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과 24시간 쉼 없이 연결돼 있기를 거부하고 내 일상, 내 리듬을 찾기로 한 것은 분명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심리치료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현대인의 생필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은 무수한 가치를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굳이 가족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의 일상에 너무나 쉽게 간섭하고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된 것, 즉 나만의 온전한 생활을 누리기 너무 힘들어진 것이 저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미국 심리학회에 발표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쉼 없이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행위 자체가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 요인이 됩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도밍게즈 힐스 캠퍼스의 커뮤니케이션 교수 낸시 치버는 휴대폰 이용이 우리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결과는 미국 심리학회의 연구 결과와 비슷했습니다. 이메일, 문자메시지, 소셜미디어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가족, 친구,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 곧 끊임없는 걱정거리를 만들고 근심을 낳습니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심리학자 스캇 베아는 지난해 <데일리 메일>에 휴대폰의 수많은 알림을 쉬지 않고 그때그때 확인하다 보면 생산성이 무려 40%나 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스마트폰을 꺼놓고 모든 메시지를 다 무시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가족과 너무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상황은 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고, 이미 그런 상황이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지난 2014년 로욜라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테레사 디도나토는 한 심리학 저널에 쓴 글에서 끊임없이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이른바 ‘모바일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자체에 너무 의존하고 집착하게 되며 사생활이 침해받거나 ‘내 삶’의 경계가 자꾸 허물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선의로 보낸 문자메시지가 사랑하는 사람과 친밀하고 원만했던 관계를 오히려 해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상대방은 좋은 뜻으로 보낸 메시지라도 너무나 많은 문자메시지 홍수 속에 진절머리가 나버린 내 상태를 알 길이 없는 상태에서 보낸 메시지는 오해를 빚고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연락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수도 없이 일어나는 겁니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는 일이 점점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면, 지금 당장 지켜야 할 선을 그어보는 건 어떨까요? 코네티컷의 임상심리학자 다나 지온타는 댄 게라와 함께 쓴 책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집중하는 법>에서 그렇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문자메시지가 쉴새 없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하던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은 썩 달갑지 않거나 심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죠. 모든 문자메시지가 일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만, 가족에게서 오는 메시지가 특히 부담스러운 건 ‘그래도 가족에게서 오는 메시지는 바로 확인하고 답을 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문자는 일단 무시하고 답하는 걸 뒤로 미루더라도 가족에게서 온 문자는 차마 쉬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오는 그리 급할 필요 없는 메시지는 시도 때도 없이 오곤 합니다. 예를 들면 친척들의 가십거리나 언제 한 번 모이자는 이야기, 아니면 영화 감상평 따위의 메시지가 그런데, 이런 메시지는 굳이 지금 답할 필요가 없지만, 일단 가족에게서 오는 메시지라는 걸 아는 순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캘리포니아의 심리학자 마크 돔벡은 이런 의무감을 가리켜 ‘머릿속에 쌓이는 해야 할 일 목록(cognitive load)’이라고 부릅니다. 머릿속에 자꾸 할 일이 쌓이면 지금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지장을 받기 십상입니다. 문제는 가족에게 오는 메시지는 그 내용의 중요성에 관계없이 빨리 읽고 답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현명하게 정하기 어려워지죠. 돔벡은 이럴 때 원래 해야 할 일을 제때 마칠 수 있도록 공격적이거나 무례하지는 않되 적극적으로 경계를 정하고 선을 긋는 법에 관해 많은 글을 써왔습니다. 돔벡도 가족 관계의 특수성에서 오는 어려움이 분명히 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사람에게 가족은 당연히 소중한 존재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가족에게서 오는 연락에는 곧바로 반응하고 답하는 게 당연하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다. 이 불문율을 지키려다가 의무감에 연락하게 되기도 하는데, 가족이 아닌 남에게서 이런 압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럴 때 가족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끔 가족인데, 친한데, 가까운 사이인데 어떠냐는 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문자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문자는 때로는 성가시고,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렇게 화가 날 때 그 감정을 실어서 연락을 해선 안 된다는 거라고 돔벡은 말합니다.

누군가 당신의 영역에 들어와 사생활을 침해하고 당신의 일상을 멋대로 휘저어놓고 있을 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다. 그 사람을 공격해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생활, 개인의 공간을 보호하는 일이다.

돔벡은 당신의 생각, 당신이 주장을 적극적으로, 명확하게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장(assertion)이란 공격(aggression)도 아니고 수동적인 자세(passivity)도 아니라 그 중간에서 나만의 균형을 분명히 붙들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공격은 적대감의 발로일 때가 대부분이지만, 내 주장을 펴는 것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과 다릅니다. 가족들에게 끝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지만 단호히 말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선언하는 건 어떨까요?

“저한테는 정말 급한 일이 있을 때만 문자를 보내주셔요.”

다나 지온타는 좀 더 부드러운 방법도 있다고 말합니다. 과도한 문자메시지에 심신이 지쳤고, 그래서 짜증 난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또한, 문자를 덜 주고받거나 정해진 시간에, 혹은 한동안 그 사람과 문자를 쉰다고 그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온타는 문제를 에둘러 풀어가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는 거죠.

“우리가 주고받는 메시지, 이메일을 전부 다 그때그때 읽고 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처럼 가까이 지내는 게 저도 좋긴 하지만, 매일 이렇게 문자를 주고받는 건 제 사정이 좀 여의치 않으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연락하는 건 어떨까요?”

이 문제를 인식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는 오히려 쉽습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뒤따르는 가족들의 반응을 견뎌내고, 으레 따라오는 죄책감을 달래가며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겁니다. 사실 가족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이 문제에 힘들어하면서도 끝내 입 밖에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돔벡은 많은 사람이 공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법 혹은 수동적으로 다른 사람이 일으킨 아픔을 받아안는 법 두 가지밖에 몰라서 문제라고 말합니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무언가를 바꾸려고만 하면 이를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돔벡은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나도 상처받지 않는 법이 분명히 있다고 말합니다.

내 주장을 분명히 밝힐 때 사랑하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당신이 마음의 안정을 얻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고자 내린 결정이고 그 결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협조를 부탁하는 것일 뿐, 이 주장이 누군가를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나만의 시간, 공간, 삶은 누구도 함부로 방해해선 안 되는 것이고, 그것이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물론 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가족 중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들을 차분히 설득해나가야 한다.

내 일상을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 가족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지온타는 그런 주장을 펼 때도 가족을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하는 화법을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설명함으로써 상대방을 언짢게 했다는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당신에게 끝없는 스트레스를 주던 문자메시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마음을 한없이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가족이라도 확실하게 쳐내고 걸러내는 편이 낫습니다. 내 일상을 지키는 권한은 나 자신에게 있으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돔벡은 말합니다. 특히 다른 가족 구성원 위에 군림하고 다른 이를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에서는 가족끼리 나누는 메시지가 지나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당신의 행동을 아마도 권위에 대한 반기로 간주할 겁니다. 어쩌면 당신을 ‘가족의 전통적인 규범’대로 길들이려 하거나 이단아로 낙인을 찍으려 할 수도 있겠죠. 다른 가족 구성원을 시켜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어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골치 아픈 분란을 일으키느니, 그냥 어떤 메시지가 오든 지워버리고 귀를 닫고 입도 다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돔벡은 그래도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문자메시지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주고받아 문제가 발생하는 관계라면 아마 다른 종류의 연락, 소통도 개인의 영역, 사생활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남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문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데 유독 문자메시지만 불편할 만큼 많이 주고받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과도한 문자메시지와 소통 방식을 문제 삼는 주장을 펴는 것이라도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 즉 우리 가족의 소통의 역사, 소통 방식과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Aeon, Elisabeth Sherman)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