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인들, 부유해질수록 정치적으로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2018년 5월 21일  |  By:   |  경제, 정치  |  No Comment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 정치의 계급에 관한 전통적인 통념을 뒤집어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부유한 상류층, 가진 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었고,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서민층과 저소득층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대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 년간 소득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사회적으로는 점점 권력을 빼앗기던 몰락하는 중산층의 분노를 정확히 짚어내 효과적으로 공략했다”는 평가가 많았죠.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보다 평균 소득이 높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이들도 저소득층 사이에서 민주당과 클린턴 후보를 향한 지지가 한마디로 예전 같지 않았다는 점은 대개 인정합니다. 실제 카운티별로 유권자를 경제적, 사회적 계층에 따라 분류한 뒤 이들의 투표 결과를 분석해봐도 비슷한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1965년부터 1997년까지 30년 넘게 추적한 몇 안 되는 패널 연구 자료를 토대로 경제 계층의 장기적인 변화가 정치적인 성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직접 살펴봤습니다.

분석에 사용한 자료를 수집한 시기가 20세기 후반부였던 만큼 트럼프 현상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경제 상황의 변함에 따라 정치적인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뚜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히 1973~1982년에는 경제 성장은 정체되는데 물가도 계속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시기가 있었기에 자료로써 그 가치가 더 컸습니다.

문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 나타난 변화부터 살펴보죠. 이 시기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이들의 정치적인 성향이 눈에 띄게 보수적으로 변했습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라도 소득이 오르지 않고 정체된 이들의 성향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원래 부자가 더 보수적이고, 돈이 없으면 변화를 원하게 된다는 계급 정치의 전통적인 시각과 일치합니다. 반면에 경제가 시원찮으면 집권 여당이 심판을 받고 전반적으로 정부의 인기가 낮아진다는 시각은 이 자료에서 나타나는 결과와는 다소 맞지 않습니다.

정치학자 다이애나 머츠가 2012년과 2016년 조사한 패널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가계 소득이 줄어들거나 지역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것과 트럼프의 지지율 상승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중위 소득이 높은 곳에서 대체로 공화당 지지율이 높았습니다. 머츠는 “이른바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뒤처진 이들의 불만이 쌓여 트럼프를 향한 폭발적인 지지로 이어졌다는 가설(left-behind thesis)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머츠의 연구는 단 4년간의 데이터만 살펴본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세대를 거치며 일어나는 경제적 계층 이동의 영향력을 고려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죠. 그래서 우리는 정치학자 켄트 제닝스와 동료들이 수행한 세대를 아우르는 패널 연구 자료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패널 연구는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 935명을 30년 넘게 추적했습니다. 강산이 세 번도 넘게 바뀌는 시간 동안 개인의 경제 사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에 따라 혹은 그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태도는 어땠는지가 모두 꼼꼼히 기록됐습니다.

조사 대상인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5년은 유례를 찾기 힘든 만큼 전 국민의 소득이 고루, 빠르게 높아지던 경제적 황금기 25년이 저물어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고 사회 초년생을 보낸 시절은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소득 불평등이 다시 커지는 시기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이 늘어나고 더 높은 소득 계층으로 이동한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어들어 낮은 소득 계층으로 편입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쉰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이 부모 세대가 쉰 살이었을 때보다 못 살게 됐다고 답한 이들이 16%, 부모 세대보다 더 잘 산다고 답한 이들이 47%였습니다.

그렇다면 경제 사정과 정치적인 태도에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 먼저 1970년대 경기 침체 시기를 보면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시각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인종이나 범죄 등에 관한 사회적인 시각도 전반적으로 보수화됩니다. 이는 “경제적으로 뒤처진 이들이 보수화된다는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이죠. 1973~82년 10년 사이에 정부가 흑인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패널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11점이나 점수를 잃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을 향한 태도가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형사 피의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보다 범죄 자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은 17점이나 높아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어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요?

가계 소득이 계속해서 늘어난 이들의 견해가 가장 많이 보수화됐습니다. 즉, 경기 침체와 불황이 정치적인 불만이나 분노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를 이끄는 이들은 소득 계층이 높아지던 이들이라는 겁니다. 이들은 또 다양한 경제적인 주제에 걸쳐 대체로 더 보수적인 태도를 드러내는데, 대기업과 노조 사이에서 친기업 성향을 보이고,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나서거나 (저소득층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데 가장 거세게 반대하는 것도 이들입니다. 이 결과는 지지 정당, 대학 교육 여부, 인종, 성별 등 다른 요인을 모두 통제한 뒤에도 여전히 나타났습니다. 당시 로버트 쿠트너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경기 침체 시기에 나타난 큰 정부를 향한 반감은 알고 보니 가진 자들의 반감이었다.

이어 1982~1997년, 경제적 불평등은 계속 심해졌고, 보수화 경향도 다소 누그러지거나 진보적으로 돌아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누가 진보적으로 변했을까요? 대부분 전체 평균보다 가계 소득 증가율이 낮은 이들이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새로운 도금 시대(New Gilded Age) 첫 15년간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정치적 성향 차이는 벌어진 겁니다.

장기적인 경제 사정 변화도 지지 정당과 정당 소속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칩니다. 1973~1982 스태그플레이션 기간 소득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백인들이 공화당 지지자가 될 확률이 18% 높아졌습니다. 반대로 같은 기간 실질 소득이 줄어든 백인들이 스스로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밝힐 확률은 1%밖에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어 1982~1997년, 공화당 지지율은 전반적으로 정체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소득 증가율이 평균보다 높은 백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할 확률은 12%나 높아졌습니다. 반면 소득이 정체됐거나 오히려 줄어든 이들 사이에서는 공화당 지지세도 제자리에 머물렀습니다.

조사 마지막 해인 1997년 제닝스는 30년 넘게 조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부모 세대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경제적인 상태가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즉, 부모 세대가 쉰 살이었을 때와 자신의 지금 모습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자신이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게 됐다고 답한 백인들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32년간 33%나 낮아졌습니다. 반대로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못 살게 됐다고 답한 백인들 사이에서 공화당 지지율은 32년간 고작 4% 높아지는 데 그쳤습니다.

경제적으로 뒤처지고 소외됐다고 느낀 사람들은 실제로 경제적으로 뒤처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민주당 지지 성향을 보였습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진 이들 사이에서 공화당의 약진은 훨씬 더 두드러졌습니다.

물론 20년간 계속된 저성장과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경제적으로 뒤처진 이들에게 보수 포퓰리즘이 잘 먹혀들 여건이 조성되기도 했을 겁니다. 실제로 시골에 사는 백인 노동자 가운데는 자신들의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것을 공무원, 이민자, 무슬림, 도시에 사는 좌파 엘리트주의자들 탓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의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외부인과 낯선 이들을 문화적인 희생양으로 삼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정치적인 전략은 경제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워싱턴포스트, Larry Bartels and Katherine Cr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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