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감(Factiness): 우리는 탈 진실(post-truth) 사회를 살고 있을까?
2018년 3월 13일  |  By:   |  과학  |  2 Comments

2005년 미국방언협회(American Dialect Society)는 그해의 단어로 스티븐 콜베어가 자신의 풍자쇼 콜베어 리포트에서 “우리가 원하는 진실”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진실감(truthiness)”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2016년 옥스포드 사전은 그 해의 단어로 “공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감정이나 개인적 믿음을 객관적 사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의미하는 “탈 진실(post-truth)”을 꼽았습니다. 2017년에는 “뉴스의 형태를 띄고 퍼지는 선정적인 거짓 정보”를 의미하는 “가짜 뉴스(fake news)” 단어가 그 전 해에 비해 365% 더 쓰였고 콜린스 영어사전이 고른 올해의 단어 중 최상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정말 진실감의 세상, 탈 진실의 세상, 가짜 뉴스와 대체 사실(alternative facts)의 세상에 살고 있을까요? 정말 과학혁명 이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 인류가 이룬 모든 진보가 SNS 의 폭격 때문에 무너지게 되는 것 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역작 “다시 계몽의 시대로: 이성, 과학, 인본주의와 진보(Enlightment Now: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허위 사실, 진실 가리기, 음모론, 폭발적 인기를 끄는 망상, 대중의 광기는 인류의 역사에 늘 존재했다. 하지만 어떤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노력 또한 인류는 잃지 않았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이 진실의 종말을 이야기하며, 정치인들이 사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가지고 노는 이 시대에 인터넷은 이를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실시간 팩트 체크 입니다. 정치인들이 현실을 교묘하게 꾸며 말할때 스놉스닷컴(Snopes.com)이나 팩트체크(FactCheck.org), 오픈시크릿(OpenSecrets.org)은 이를 곧바로 확인해 올리며 폴리티팩트닷컴(PolitiFact.com)은 부지런하게 그 주장들을 진실, 거의 진실, 절반의 진실, 거의 거짓, 거짓, 거짓말쟁이로 분류합니다. 사실 폴리티팩트의 편집자 앤지 드로브닉 홀란은 2015년 한 기사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한 팩트 체크가 일종의 낚시기사(clickbait; 2014년 옥스포드 올해의 단어 후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기자들은 종종 내게 정치 토론이나 정치적 사건 이후 만드는 팩트 체크 기사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있는지를 말하곤 합니다.”

한편 핑커는 오늘날의 팩트 첵크를 퇴보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 소문으로 인해 학살이나 폭동, 린치, 전쟁(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과 1964년 베트남 전쟁, 2003년 이라크 침공 등)을 겪던 수십 년 전의 난리를 피할 수 있게 만들어”준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우리의 중세 선조들과 달리 “이제는 늑대인간, 유니콘, 마녀, 연금술, 점성술, 사혈, 장기설(miasmas), 동물희생제의, 왕권신수설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무지개와 일식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시대가 과학의 시대라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가진 이성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인간은 본래 비이성적이라 주장하는 인지 심리학자들과 행동 경제학자들, 그리고 이성이 가부장적 억압을 위한 무기라 주장한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이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이 바로 “사실감(factiness)”, 곧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처럼 보인다는 뜻의 이 단어에 걸맞는 주장입니다. 스티븐 핑커는 위의 주장이 자기모순적이라 말하며 “만약 인간이 합리적일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의 판단을 평가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찾을 수 없으며 그러한 평가를 수행할 수도 없을 것이므로 우리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절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핑커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간의 뇌는 적절한 환경 하에서는 합리적이다. 따라서 그러한 환경의 조건을 잘 파악해 늘 그러한 조건이 만족되도록 만드는 것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발견했을 때 오히려 인지 부조화를 막기 위해 신념에 더 집착하는 비이성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증거가 압도적으로 나타나게 되면, 특히 자신의 동료들이 새로운 신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를 같이 수용하게 되는 “감정적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나 가용 휴리스틱, 그리고 권위에의 호소나 순환 논리, 인신공격의 오류, 특히 히틀러의 오류 등의 인간이 가진 수많은 인지 편향을 배우는 “편향 적응(debiasing)” 프로그램을 이수함으로써 더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대립되는 양 측을 모두 변호하게 만드는 것, 특히 “네가 주장을 바꾸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과 상대편 주장의 핵심을 파악하게 만드는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철학자 피터 보고시안이 개발한 효율적인 사고 도구입니다.

핑커는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치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감정적 편향과 빈번한 비합리성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이성과 진실을 추구하게 만드는 계몽주의의 이상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마이클 셔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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