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부고기사 Feb.17, 1988 (1/2)
2018년 2월 12일  |  By:   |  과학  |  No Comment

전후 세대 이론물리학자 중 가장 똑똑하고 창조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파인만이 지난 월요일 밤 위암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양자 이론의 한 설계자이며 맨하탄 프로젝트에서는 젊은 물리학자들의 리더였고, 입자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유례없는 기법인 “파인만 다이아그램”을 발명한 그는 1940년대 불완전했던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다듬어 평범한 물리학자들도 이를 이해하고 계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의 연구들은 현대 물리학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에도 미국인 대부분은 그가 1986년 첼린저호 폭발사건 조사를 위한 대통령 직속위원회에서 호기심 가득하면서도 독설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는 워싱턴의 청문회 장소에 얼음물을 가져다달라고 요청하고 로켓 부스터를 밀봉하는데 사용되는 O링을 얼음물에 집어 넣었다 꺼낸 후 집게로 이를 누르는 실험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30초의 시간과 아무런 추가비용이 들지 않은 이 간단한 실험으로 그는 로켓 연료의 밀봉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완벽하게 보였고 이는 사고원인 조사과정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를 동료로, 혹은 스승으로 알고 있었던 물리학자들은 그가 가진 자연의 단순성에 대한 믿음과 진부함에 대한 혐오를 익히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프린스턴 고등과학연구원의 프리먼 다이슨의 말이다.

천재와 ‘마법사’

“그는 당대의 가장 창조적인 이론물리학자였고 진정한 천재였죠.” 미국물리학회 회장을 지낸 시드니 D. 드렐의 말이다. “그는 자신만의 창조성으로 모든 물리학 분야에 손을 댔습니다.”

코넬 대학의 한스 베테는 수학자 마크 캑의 표현을 빌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다고 말했다. 한 종류는 위대한 업적을 낸 보통의 천재로, 다른 과학자들이 나도 그 문제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면 그런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천재이다. 반면 다른 한 종류는 마법을 행한다.

“마법사는 누구도 할 수 없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문제를 풉니다. 파인만이 바로 그랬습니다.”

파인만은 20대의 연구결과인, 중력과 방사능 현상을 제외한 모든 물리적, 화학적 과정을 지배하는 양자전기역학 이론을 완성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많은 이들은 그가 머레이 겔-만과 같이 만들었던, 방사성 핵에서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 등을 설명하는 약력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파인만은 두 번째 연구를 더 마음에 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진짜 중요한 문제를 카페트 아래로 숨겼다는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때 적어도 나는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곧 자연이 가진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알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죠.”

교육자이자 작가

그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온도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액체 헬륨을 설명하는 수학적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스탠포드 선형가속기에서 고에너지 충돌을 겪는 전자들의 행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가장 분명한, 그러면서도 놀라운 단순성을 가진 설명을 만들어냈다.

이 네 가지는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이지만, 그는 또한 교육자이자 작가로서 현대 물리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40년대를 코넬대학에서 보내고 후에 칼텍으로 옮겨와 긴 시간을 보낸 그는 온 몸과 다양한 소리를 사용하는, 이론물리학자와 서커스 안내원이라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조합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강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물리학 전반을 다룬 “파인만 렉처스 온 피직스”는 교과서로 출판되었고 어떤 물리학 교재도 이를 대신할 수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물리 법칙의 특성(The Character of Physical Law)”과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1985년 쓴 회고록인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식에 대한 끝없는 추구

과학 외의 영역에서도 파인만은 호기심 많은 흥미로운 인물(a curious character)이었다. 이는 그 자신의 표현으로, 이중적인 의미(역주: 자신도 호기심이 많으며 스스로도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뜻)는 의도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지식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라디오 수리를 배웠고, 자물쇠 따기, 누드화 그리기, 포르투갈어 말하기, 봉고 연주하기, 마야 상형문자 해독하기 등을 배웠다. 그는 지식에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욕조에서 개미가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지를 연구했고 박테리오파지의 돌연변이를 연구할 수 있을 정도로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는 십 대 때 몇 달 동안 잠들기 직전의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려 했으며 중년에 들어서는 감각차단탱크 안에 들어가 유체이탈 환상을 유도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인만은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며 모든 거짓 지식, 특히 의사과학(pseudo-science)을 경멸했다. 그는 의사과학을 “카고 컬트 과학”이라 부르며 현대심리학의 한 줄기로 만들었다.

그는 몇몇 태평샹의 섬에서는 2차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물자를 실은 비행기가 도착하기를 바라는 제례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활주로를 만들고 나무로 깎은 헤드폰을 쓰고 대나무 안테나를 든 남자를 앉힌 후 활주로에 불을 밝히고 비행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는 카고 컬트 과학자들이 이와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적 연구와 비슷한 일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이 빠져있기에, 비행기는 절대 도착하지 않습니다.”

파인만의 경우 비행기는 거의 항상 도착했다.

로스알라모스에서 맡았던 요직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은 1918년 5월 11일 퀸스의 파 락어웨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1살 혹은 12살 즈음부터 사색을 통해 라디오를 수리하기 시작했으며, 이웃들로부터 머리를 써서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35년 파 락어웨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MIT 학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194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시기 그는 뉴멕시코 로스알라모스에서 원자폭탄을 만드는 맨하탄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다.

파인만의 기억을 포함한 당시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는 부대의 검열 및 보안을 맡은 책임자들을 골탕먹이는 방법을 찾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듯 하다. 그와 그의 첫 부인은 직소 퍼즐의 조각을 이용해 편지를 주고 받았다.

파인만은 원자폭탄의 비밀이 들어있는 금고를 열기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금고에는 “플루토늄 생산 계획, 원자폭탄의 구조, 중성자 방사능 데이터, “전체 계획” 등이 들어있었다고 그는 후에 썼다. 금고의 보안을 맡은 책임자가 자리를 비울때마다 그는 금고를 열고 이런 식의 쪽지를 남겼다고 한다. “문서번호 LA4312 를 빌려갑니다 – 금고털이 파인만”

원시적 컴퓨터 운용

그러나 파인만이 로스알라모스에서 맡았던 일은 그가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남긴 일화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이론 부서의 책임자였던 베테는 파인만을 자신의 팀원 중 가장 독창적인 인물로 기억했다.

이들 두 사람은 핵폭탄에 의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계산하는 수식을 만들었다. 이 수식은 아직도 기밀로 분류되어 있다고 베테는 말했다. 파인만은 또한 엄청난 계산이 필요한 부분을 컴퓨터로 수행하는, 당시 원시적이었던 컴퓨터 운용을 책임졌다.

맨하탄 프로젝트에서의 시간은 겁없는 젊은 과학자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에드워드 텔러의 사무실에서 열리는 회의에 종종 참석해 엔리코 페르미와 존 폰 노이만과 열렬하게 토론했으며 자신의 탁상용 계산기를 최고 속도로 두드리며 같은 문제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폰 노이만과 경쟁하곤 했다.

프로젝트 마지막 단계에서 파인만은 자신이 아마 유일하게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을 트럭 유리창 뒤에서 맨눈으로 볼 정도로 자신감을 가졌던, 혹은 겁이 없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원자폭탄에서 나오는 자외선만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지만 유리창이 자외선을 막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후,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 앉아 맨하탄 중심부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의 피해 범위를 계산해 본 그는 수 년 동안 폭탄 개발에 매진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완전히 잊게 된다.

“그러니까 말이죠, 나는, 아니 우리는 이를 좋은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완성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죠. 재미도 있었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을 멈춘거죠. 그냥 말입니다.”

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2차대전 이후, 베테는 그를 코넬 대학의 교수로 초청하고 파인만은 이를 받아들인다. 4년 동안 그는 후에 노벨상을 받게될 QED라 불리는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한다.

어떤 면에서는 파인만은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1940년대에는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혁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인슈탸인의 상대론은 과학자들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고 양자이론은 입자와 파동의 형태를 띤 물질과 에너지의 양태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다.

이 두 혁명적 이론이 원자폭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이 두 이론을 바탕으로 기본 입자의 특성과 이들이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핵력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19세기 만들어진 빛과 라디오파와 같은 고전적 전자기파에 대한 이론을 현대적으로 바꾼 양자전기역학이 바로 그런 새로운 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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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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