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지뢰
2018년 1월 9일  |  By:   |  세계  |  No Comment

지뢰나 부비트랩 등 폭발물로 인한 피해 규모를 보면 세상은 아주 빠른 속도로 퇴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016년 수치가 포함된 가장 최근의 새로운 통계 수치를 보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제 지뢰 금지 협약 산하 연구 부서인 랜드마인 모니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지뢰나 부비트랩으로 인한 사상자는 총 8,605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2,089명이었습니다. 앞서 2015년의 사상자 수인 6,697명보다 무려 25%나 더 늘어난 것이고, 2014년 3,993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게다가 이 집계는 최종 확인된 사상자 숫자만 더한 것이므로, 실제 사상자는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큽니다. 랜드마인 모니터는 “수많은 사상자가 보고되지 않거나 기록에서 누락되는 나라나 지역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2016년 사상자의 대부분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우크라이나, 예멘 등지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무려 56개국에서 정부군, 혹은 대체로 반란군이 설치한 사제폭발물이나 위장 폭탄 등에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통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상자의 80% 가까이가 민간인이고, 민간인 사상자의 42%는 정확한 연령대는 확인되지 않은 어린이와 청소년입니다.

특히 집속탄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야구공만 한 크기의 집속탄 하나에 수십,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방으로 퍼지는 집속탄 파편에 폭발 주위에 있는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는데, 특히 집속탄은 불발탄으로 남아있는 게 많아서 이 사실을 모르고 폭탄을 집어 든 민간인이 희생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한창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피해를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2016년 집속탄으로 인한 사상자 숫자만 확인된 것이 971명으로 2015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집속탄 감시단체는 밝혔습니다. 대부분 사상자는 시리아 민간인들이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에서 산 집속탄을 예멘에서 사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가 소위 “폭발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한 것이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일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9년 전 세계 여러 나라는 지뢰의 생산과 비축, 거래, 설치를 금지하는 협약을 발효했고, 현재 163개국이 협약에 가입해 있습니다. 이 덕분에 지뢰로 인한 사상자는 꾸준히 줄었습니다. 협약이 발효된 1999년만 해도 연간 사상자 수가 9,228명에 달했지만, 2013년에는 역대 최저인 3,450명으로 줄었습니다. (비슷한 집속탄 사용 금지 국제 협약에는 119개 나라가 가입해 있으며, 협약은 2010년 발효됐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이룩한 성과는 최근 들어 격화된 몇몇 분쟁지역 탓에 2016년 통계치에서 드러나듯 물거품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다행히 모든 상황이 한없이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랜드마인 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을 필두로 총 32개 나라가 2016년에만 지뢰 제거작업과 지뢰로 인한 피해자 지원에 쓰는 데 4억 8천만 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전년도보다 22% 늘어난 수치입니다. 2016년에만 대인지뢰 23만 2천 개 이상이 제거됐고, 총 171km2에 달하는 지역이 지뢰나 폭발물 없는 지역으로 공인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현대전을 여러 방면에서 치르고 있거나 치를 능력이 있는 주요 국가들이 지뢰 금지 협약이나 집속탄 금지 협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거나 협약에서 발을 빼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나라들은 중국, 이란, 이스라엘, 북한,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입니다. 미국 국방부는 오랫동안 산탄식 폭탄의 사용 자체를 금지해버리면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미국 정부는 또 남북한 사이의 비무장지대에 매설해 둔 수많은 지뢰를 유사시 북한의 남침 속도를 늦출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핵보유국에 가까워지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비무장지대에 심어둔 지뢰는 갈수록 별 쓸모없는 냉전 시대의 유물이 돼 버렸습니다.

미국이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려 노력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지뢰는 반인도적인 무기로 워낙 악명이 높았던 탓에 미군은 1991년 걸프전 이후로 지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미군이 보유한 지뢰는 약 300만 개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뢰 금지 협약이 나오기 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줄어든 수치입니다. 국제 지뢰 금지 캠페인이 집계한 러시아군의 지뢰 비축량 2,600만 개보다 훨씬 적습니다. 또 미군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뒤 전쟁 초기에는 집속탄을 곧잘 썼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2014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지뢰 금지 협약에 가입할 뜻이 있음을 내비친 적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가입이 추진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앞장선다면 다른 나라들에도 도덕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온갖 국제 조약은 깡그리 무시하고 비방하기 바쁜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하면 미국이 이번 행정부 때 지뢰 금지 협약에 가입할 가능성은 0%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허락 아래 미국 국방부는 최근 과거에 쓰던 집속탄 비축량을 다시 늘리라는 지시를 군에 내렸습니다. 집속탄은 앞서 언급했듯이 불발탄이 많아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난 후에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되기 쉬운 위험한 무기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리비아, 우크라이나, 그리고 예멘 같은 나라에서는 총기보다도 지뢰나 폭발물로 인한 위험이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베트남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한데, 1975년 전쟁이 끝난 이후 미군이 남기고 간 지뢰나 폭발물, 불발탄으로 남은 산탄식 폭탄에 목숨을 잃은 베트남 국민이 최소 4만 명, 부상자가 최소 6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들이나 호기심에 가득 차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도 모르고 불발탄을 집어 든 어린이들의 희생이 잇따랐습니다.

현재 전쟁으로 국토가 폐허가 된 나라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을 가능성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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