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의 진실
2017년 11월 27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 브리스톨대학교 고고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캐트린 자르만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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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2년 부활절 일요일에 유럽인들이 처음 발을 들여 이스터섬이라는 이름이 붙은 라파누이(Rapa Nui)에서 일어난 미스터리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졌습니다. 163.6km2에 불과한 작은 이스터섬은 반경 2천km 안에 사람이 사는 섬이 하나도 없을 만큼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가장 외딴 섬입니다. 섬에서 일어난 일을 둘러싸고 하도 많은 이야기가 덧씌워져 이스터섬은 곤욕 아닌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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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 위성사진으로 보면 온통 바다뿐인 태평양 한가운데 눈을 가늘게 떠도 보일까 말까 한 점 하나가 이스터섬입니다.

우선 이 외딴 라파누이에 사는 원주민들이 폴리네시아에서 왔는지, 아니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왔는지부터 오랫동안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스터섬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죠. 이 큰 돌을 어떻게 깎아 섬의 내륙 채석장에서부터 해안가를 비롯한 섬 곳곳으로 옮겨 세워둔 건지, 자원도 딱히 풍부하지 않고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이 작은 섬을 지키는 여러 석상의 존재는 그 자체로 수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모아이 석상을 토대로 오랫동안 이스터섬에 있던 문명의 실체를 연구해 왔습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이 과연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석상을 만들어 세울 만큼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것인지, 아니면 아마도 아메리카 대륙의 앞선 문명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기술을 들여와 석상을 세우고 이어 섬의 천연자원을 모두 고갈시킨 것인지를 두고 인류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최근 들어 라파누이는 인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환경 파괴가 문명을 송두리째 멸망으로 이끈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됐습니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상이 되었죠.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뜻하는 “ecocide” 가설을 널리 퍼뜨린 건 유명한 지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라파누이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인류도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60년 넘게 계속된 고고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경파괴 가설은 맞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유전자 데이터 분석이 더해지면서 이스터에 꽃피운 문명은 어리석게 삶의 터전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라파누이의 실체, 이스터섬의 진실이 점차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설득력 떨어지는 환경파괴 가설

‘환경파괴 가설’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먼저 한때 수천 내지 수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되던 라파누이 인구가 유럽인들이 처음 발을 들인 18세기 초에는 어떤 연유인지 1,500명에서 많아야 3천 명 이하로 줄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라파누이 주민들은 석상을 옮기려고 섬 전체에 번성했던 야자나무를 마구 베어버렸다는 겁니다. 토양을 지탱해줄 나무를 마구 벌목하고 나니 땅이 점차 쓸려내려 갔고, 작황은 덩달아 나빠졌습니다. 나무가 모자라니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을 때 필요한 배를 건조하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다툼이 내전으로 비화했습니다.

라파누이의 인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한때 라파누이의 인구가 4천~9천 명 정도였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당시 농사를 지어 얻은 곡식과 다른 먹을거리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라파누이가 1만5천 명까지 먹여 살릴 수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22년 유럽인이 발을 들이기 전에 라파누이 인구가 급감했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20세기 초 민족지 연구보고서에 경쟁 관계에 있던 여러 집단의 갈등이 전투로 이어졌다는 구전 설화를 기록한 것이 라파누이 인구 급감설의 진원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출발해 잉카식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 것으로 유명한 인류학자 토르 헤이에르달은 민족지 연구를 바탕으로 1680년에 섬 안의 내전이 격화돼 원주민 다수가 살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라파누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요석 조각은 당시 주민들이 치열했던 전투에서 사용한 무기의 파편이자 흔적이라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칼 리포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라파누이 곳곳에 널린 흑요석 파편이 무기가 아니라 가재도구 혹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데 필요한 도구의 흔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유골이나 곁에서 함께 발견되는 물건을 토대로 유추해봐도 크게 다친 상태인 사람들은 2.5%에 불과합니다. 상처가 아물고 있던 정황이 보이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설사 갈등이 있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전쟁은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빼면 같은 부족을 죽이고 내전이 격화돼 섬 전체가 사실상 멸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7세기에 일어났다고 하는 전쟁의 결정적인 근거가 20세기 들어 처음 기록된 구전 설화뿐이라면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많던 야자나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라파누이 사람들은 섬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며 잘만 살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발견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한때 섬 전체를 뒤덮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야자나무들이 급격하게 사라진 건 서기 1200년경 라파누이에 처음 사람들이 발을 들인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꽃가루 분석 등 분자 식물학에 사용되는 방법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야자나무가 급격히 사라진 건 사실로 보이지만, 인간의 활동 탓에 그랬다는 설명은 근거가 빈약해 보입니다.

대신 유력한 범인으로 꼽히는 건 폴리네시아 쥐입니다. 폴리네시아 쥐들은 처음 라파누이에 들어온 사람들의 배에 숨어있다가 섬에 발을 들였는데, 야자 열매는 물론 어린나무까지 먹어치우는 식성에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야자나무 숲은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최근 진행한 제 연구에 따르면 라파누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상당히 많이 얻었고,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농사 기술도 뛰어났기 때문에 야자나무가 사라졌다고 당장 굶어 죽거나 부양력이 낮아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벌목보다 무서웠던 노예무역

그렇다면 라파누이의 인구가 줄어들고 미스터리로 남은 석상 조각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20세기 초에 분출된 갈등과 내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19세기 내내 남아메리카에서 온 노예무역상들이 섬을 급습해 섬에 있던 원주민 절반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1877년 라파누이의 인구는 111명으로 급감합니다. 유럽인은 섬에 없던 질병을 가져왔고, 섬 곳곳을 파괴했으며 섬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했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희소해진 자원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아마도 민족지 연구에 기록된 구전 설화 속 내전은 이때 일어난 갈등을 가리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석상 조각이 중단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죠.

지금까지 유럽인들보다 몇 세기 앞서 남아메리카에 있던 사람들이 라파누이를 발견해 여기 정착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현재 이스터섬 원주민들의 DNA에서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DNA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고고유전학자 라스 페렌슈미츠는 이런 정설에 의문을 품었고, 새로운 증거를 찾아 왔습니다. 해당 연구에 저도 참여했는데, 우리는 유럽인이 당도하기 전과 후 라파누이 사람들의 유골과 유품에서 발견되는 DNA를 분석했습니다.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저희 연구논문은 1722년 유럽인이 이스터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라파누이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이스터섬 원주민들의 DNA는 18세기 이후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을 통해 바뀐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환경파괴가 부른 끔찍한 인구 급감이라는 날조된 서사는 이스터섬의 진실이 아닙니다. 대신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어떤 것을 둘러싼 근거 없는 추측이 쉽게 정설로 굳어져 버렸다는 점, 가해자의 역사를 집단으로 망각해버린 탓에 정작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놀라우리만치 잘 살아오다가 피해자가 된 이들을 오히려 어리석게 멸망을 자초한 이들로 내몰았다는 것이 이스터섬의 진실이자 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여전히 석상들을 어떻게 옮겼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고요? 사실 그 궁금증도 몇 년 전에 연구를 통해 풀렸습니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실천했던 기발하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이죠. 모아이 석상은 라파누이 사람들이 끌고 당겨주면 알아서 걸었습니다.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라파누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왔을 테니까요.

(컨버세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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