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범죄가 용인되는 환경의 확장을 막아야 합니다
2017년 11월 6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요즘 뉴스를 보면 세상은 성범죄자들로 가득찬 것처럼 보입니다. 선한 남성들이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 잘 모르는 여성의 목구멍에 혓바닥을 밀어넣는 범죄자가 되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기까지는 반드시 몇 단계를 거치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어린 시절 환경의 영향으로 섹스에 대해 특정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린 시절 읽는 모든 동화와 고전 소설로부터,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의 인생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죠.

이것을 “사랑의 방”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공간에서 우리는 먼저 누군가를 알게 되고, 불꽃이 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상대를 더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식사를 한 끼 하면서, 그 다음에는 다른 활동들을 함께 하면서 말이죠. 그러는 동안 당신은 상대가 당신의 사랑을 퍼부을만한 사람인지, 즉 사랑을 돌려줄 사람인지를 판단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의 고전 소설 역시 등장 인물들이 잠재적 연인의 장점과 단점을 놓고 재면서 상대를 분석하는 과정을 담고 있죠. 이 공간에서 섹스란 매우 특별한 행위입니다. 서로를 발견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친밀하고 사적인 형태의 소통이죠. 상대가 나의 마음을 신뢰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자, 가장 내밀하고 취약한 부분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적어도 어린 시절을 이 방 안에서 보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춘기에 이르면 이상한 일이 벌어지죠. “사랑의 방”은 사라지고 많은 남성들이 “탐색의 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공간에서 섹스는 숨은 보물이자 쾌락입니다. 다른 모든 쾌락과 다를 바가 없지만 더 좋고 강렬한 무언가죠. 당신이 이성애자 남성이라면 당신에게 그런 쾌락을 선사할 수 있는 상대는 여성입니다. 대학 파티나 클럽에 간 남성들은 쾌락을 함께 나눌 여성을 찾아 헤맵니다. 대부분의 대중 가요는 그와 같은 탐험과 정복을 주제로 삼고 있죠. 이 공간에서 섹스는 시장 거래와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외모가 얼마나 훌륭한지, 말솜씨가 얼마나 매끄러운지에 따라 매겨집니다. 그에 따라 “점수를 올리는” 시스템이죠.

하지만 이 단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수 남성들은 다음 단계로 이동합니다. 바로 “성범죄자의 방”입니다. 섹스로부터 얻는 쾌락과 권력으로부터의 기쁨이 뒤섞이는 공간이죠.

성추행은 섹스와 권력 행사의 혼종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성범죄자들이 자신을 성적으로 자극하는 여성을 벌하는데서 쾌락을 얻는다고 분석합니다.

성범죄자들의 심리에 대한 연구는 갈 길이 멀지만, 몇 가지 드러난 사실들이 있습니다. 성범죄자들을 특정한 성격으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성범죄자가 될 기미는 상당히 어린 나이에 나타납니다. 성범죄자적인 특성은 20대 초반에 드러나기 시작하죠. 이들은 연애 관계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애에 빠져 있으며, 피해자가 감정을 가진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죠. 하지만 결코 비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느끼는 남성중심적인 환경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을 얼마나 잘 보는가 라는 점입니다. “사랑의 방”에서 사람들은 상대를 깊이있게 파악하려고 노력하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상대를 파악하는 방식이 조금 더 천박해집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눈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행실이 드러난 남성들은 하나같이 “상대가 그렇게 고통을 겪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죠.

둘째, 두 번째 방과 세 번째 방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이미 포식자들이 “탐색의 공간”을 범죄에 유리한 환경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대중의 인식 속에 원치않는 성적 관심과 강압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그저 호색한일 뿐”이라는 말 정도로 빌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합리화시키곤 합니다. 범죄 행위를 “락커룸 수다”나 “남자다운 행동” 취급함으로서 이들은 성범죄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합니다.

끝으로 핵심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첫 번째 공간, 즉 “사랑의 방”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성들이 이러이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성(性)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게 서면, 범죄 행위의 개념과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 또한 분명해질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라면 “포식자”가 아무리 극소수라 해도 이들의 행위가 무뎌진 다수에 의해 용서받게 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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