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던 민주화의 영웅 아웅산 수지는 어디로 갔나?
2017년 11월 4일  |  By:   |  세계  |  1 comment

누구도 이런 상황이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5년 미얀마 국민이 마침내 아웅산 수지 여사를 미얀마를 이끌 지도자로 선출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마치 정치적 성인군자처럼 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 군부 독재정권의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마침내 미얀마를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이끈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아웅산 수지였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아웅산 수지를 칭송했고, 힐러리 클린턴은 공개석상에서 아웅산 수지를 향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 의원은 한때 아웅산 수지를 간디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웅산 수지를 향해 이제는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상 미얀마의 정치지도자인 아웅산 수지는 미얀마 군부가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살해하고 성폭행하며 고문하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을 저질렀음에도 이를 끝내 모른 체하고 있다.

한때 칭송의 대상이었다가 이렇게 순식간에 악의 원흉으로 전락해버린 아웅산 수지 여사의 사례가 놀랍기도 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서구 지도자들은 제3 세계에서 엄청난 희생을 무릅써가며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개인을 여러 번 추켜세웠다. 독재나 권위주의 정권, 혹은 갓 태동한 민주주의의 혼란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지형이나 사회경제적 배경을 골치 아프게 언급할 필요 없이 개인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책임을 지지 않고 문제를 적당히 덮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복잡한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갖춰야 할 조건에 부합하는 한 그 영웅의 결점은 쉽게 덮어버렸고, 그 영웅이 마침내 권력을 쥐게 됐을 때 직면할 문제를 간과했다. 또한, 실상은 그 나라와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인데도, 마치 그 나라와 국민이 영웅이나 다름없는 지도자의 사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치명적인 실수도 계속 되풀이됐다.

 

곳곳에서 켜진 경고등

“다른 나라 지도자를 신격화하거나 악마화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일이 자꾸 반복되고 있어요.”

콜게이트대학교 정치학과의 다니엘 럽튼 교수의 말이다. 럽튼 교수는 지도자의 행동이 외교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원래 정치가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럽튼 교수는 이렇게 비약적으로 정치인을 단순히 재단해버리려는 유혹 자체가 워낙 강력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한 번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나면 생각을 바꾸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정치를 둘러싼 심리적 기제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확증 편향이 발견돼요. 사람들은 대개 어떤 결과나 정치인, 다른 집단에 대해 좋거나 싫다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정해놓은 결론과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이야기만 들으려 하고, 반대되는 이야기에는 귀를 닫아버리니 편견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확증 편향의 관점에서 보면 왜 서구 사회가 아웅산 수지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어쩌면 그녀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할 적임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우려를 낳을 만했던 사건이나 정황을 무시하고 간과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웅산 수지는 2013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로힝야족을 향한 탄압과 폭력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이를 퉁명스럽게 통째로 부정했다. 정확히는 “불교도들도 과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던 적이 있다.”며, “종교가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두려워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왜 미얀마 내에서 폭력의 피해자는 대부분 무슬림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불교 신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가 영향력을 넓히는 데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동문서답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해갔다.

아웅산 수지가 선거를 치르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의 전조는 여러 차례 감지됐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문제였던 것이 보일 뿐, 당시 아웅산 수지는 이미 신격화된 이미지를 굳힌 상태였기 때문에 확증 편향 기제가 발동해 누구도 이를 문제로 여기지 않은 채 넘어갔다. 서구 지도자들은 여전히 아웅산 수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내기 바빴고, 그녀가 이끄는 정당이 승리할 것이 확실시되는 선거를 조속히 치르도록 미얀마 과도 정부를 거듭 압박했다.

“확증 편향이란 것이 너무나 강력해서 기존의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철저히 걸러지는데, 정작 우리는 왜곡된 정보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럽튼 교수는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확증 편향이 훨씬 심각한 정치적 편견을 낳는다고 말한다. 즉, 정치 제도 자체가 정치 지도자의 특징을 반영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게 되는데, 현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정치 제도가 지도자의 품격을 결정하는 편이다.

이런 편견이 한데 어우러져 영웅이나 다름없는 위대한 개인이 권력을 쥐면 민주주의든 정치적 자유든 제도나 문화는 알아서 정착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미국 외교 정책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 선더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우방이자 동반자를 찾습니다. 그런 사람 한 명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그 나라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그 사람에게 맡겨놓고, 우리는 산더미같이 쌓인 다른 문제를 걱정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게 되니까요.”

 

수많은 구세주 후보들

영웅적 리더십을 발휘해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해내고 민주화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신화에 가깝게 윤색된 이야기는 대개 허구로, 현실에서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예는 거의 없다.

한때 미국이 탈레반의 압제로부터 아프가니스탄을 구해낸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해 마지않던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미국은 권력을 쥔 카르자이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만연했던 부패와 파벌 정치를 뛰어넘는 지도력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구악을 답습하며 내부 요직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고 실망을 금하지 못했다. 선더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한 개인을 온갖 훌륭한 가치의 수호자이자 정치적 구세주로 그리며 옹립하면 자연히 그 개인에게 온갖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죠. 권력을 손에 쥔 개인이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죠.”

1994년 르완다 내전과 대학살의 끔찍한 기억을 딛고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으며 대통령이 된 폴 카가메 대통령은 처음 집권했을 때만 해도 나라를 구할 구세주로 추앙받았다. 빈곤율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지만, 카가메 정권은 권위주의 정권으로 변하고 말았다. 야당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옥살이를 해야 했고, 추방되거나 살해당하기도 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카가메 정권 아래에서 군부가 광범위한 불법 구금과 고문을 자행했다고 고발했다.

수단 인민해방운동은 수단 다르푸르 대학살과 관련해 인종 학살, 전쟁 범죄, 반인륜적 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수단의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대통령에게 맞서 싸우던 반군이었다. 반군 시절만 해도 인민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남수단이 수단에서 분리해 독립국가가 되고 인민해방운동과 동맹군들이 남수단의 집권 세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수단은 또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서방 세계 지도자들만 이런 오판을 내리는 건 아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아프리카 독립운동을 이끌던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같은 지도자들은 전 세계 많은 활동가가 칭송해 마지않던 인물이다. 무가베처럼 한때 인민 해방의 선구자로 여겨지던 인물 가운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가 되어 버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 같은 인물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만델라의 사례는 워낙 특이한 예외인 데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화가 성공을 거둔 데는 수많은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에 그 비결을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 어려울 만큼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힘쓰는 활동가들조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에서 어떤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독재자의 면모’

아웅산 수지 여사를 카가메나 무가베 같은 독재자에 비견하는 건 분명 지나치다. 하지만 미얀마의 실권자가 된 지난 20개월여의 행보를 찬찬히 살펴보면, 아웅산 수지에게서 실제로 위의 독재자들에게 보이던 특징이 엿보이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거에서 승리해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 아웅산 수지는 제일 먼저 그녀를 지지했던 폭넓은 시민사회 세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이었던 8888항쟁을 기리는 단체 민주화 88세대의 활동가이자 정치범으로 군부 독재 정권 아래에서 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활동가 유얀 묘테인 씨는 아웅산 수지의 최측근들을 가리켜 사실상 그녀를 신처럼 떠받드는 추종 세력으로 묘사한다.

“아웅산 수지는 자신의 최측근들이 하는 말만 듣습니다. 정확히 독재자들의 특징이 그렇죠.”

수지 여사를 향한 전 세계의 지지와 갈채가 계속되면서 미얀마 안에서도 아웅산 수지가 권력을 공고히 다지며 자신을 향한 비판을 억누르려는 듯한 모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사회 단체 파웅쿠를 이끄는 캬우 투 씨는 말했다.

“아웅산 수지와 여당은 집권 세력이 된 뒤에도 여전히 자신들을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모든 것을 중앙집중화해서 통제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세력은 누구든 바로 적으로 간주됩니다.”

이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한하는 법을 어긴 혐의로 수십 명이 기소됐다. 군부 독재 아래서 정권에 반대하는 이를 옥에 가둔 것을 떠올리게 하는 행보다.

호주 로위 인스티튜트의 애론 코넬리는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정당 민족민주동맹이 정확히 그런 식의 철권통치로 특징지어질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로힝야족에 대한 아웅산 수지의 실망스러운 행보가 아니더라도 이미 “그녀는 자유주의 지도자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교훈을 찾아서

지난 세대의 정책결정자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 지도자 개인을 중심으로 그 나라의 사안을 파악하려는 습관을 쉽게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옛날 방식에서 비롯된 수많은 실패를 거울삼아 국제 사회가 이제는 다른 나라의 사안에 접근하는 새로운 규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평화봉사단 베를린 사무실에서 일하는 팀 허스첼번스는 개인 블로그에 “매번 같은 패턴이 수도 없이 반복된 탓에 이를 인지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지경”이라고 썼다. 그는 한 나라의 문제를 위대한 지도자 한 명을 세워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고 더 오래 걸리는 길이라도 아래로부터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환경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또한, 아웅산 수지를 미얀마의 문제를 일시에 전부 해결해줄 대단한 존재로 여기다 보니 세상이 점점 그녀의 도덕적 정당성이나 용기에만 주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녀가 대변하는 실제 정치력보다도 자꾸 더 큰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모든 정치지도자는 결국 그가 속한 정치 제도의 수준을 반영한다. 지도자가 말하는 모든 바른말, 좋은 말과 훌륭한 의지는 항상 해당 정치 제도가 허용하는 범주 안에 있다. 만약 정치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지도자의 실수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아웅산 수지의 통치 방식이 미얀마 시민들이 정말로 원하는 민주주의일지도 모른다.

2015년 아시아 바로미터가 미얀마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대부분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 없다고 답했고, 종교적 권위를 앞세운 세력이 입법 과정에 참여해야 하며 시민권도 종교에 따라 인정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만 보면 미얀마 국민은 권위주의적인 철권통치 지도자를 원했고, 소수 집단의 권리를 존중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유엔에서 일했던 역사학자 탄트 민트유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저 독재를 끝내고 국민이 지지하는 인기 있는 지도자를 권력의 정점에 세우면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특히 인종, 민족,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차별받지 아니할 권리에 관한 가치 같은 것도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미얀마에선 관심 밖이죠.”

아웅산 수지의 행보에 서방 세계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하고 있다. 그녀를 평화적인 비폭력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추켜세우는 데 앞장섰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며 아웅산 수지가 수상했던 노벨평화상을 철회해야 한다는 탄원서까지 넣었다.

그리피스 아시아 연구소의 앤드루 셀스 교수는 최근 다음과 같이 썼다.

“아웅산 수지가 추락하게 된다면, 여기에는 그녀를 이토록 높은 곳까지 밀어 올리고 추켜세운 국제사회의 책임도 크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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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대말을 사용하지 않은 번역이 신선합니다. 훨씬 빨리 읽히고 공적으로 느껴져요. 아마 이게 요즘 보통 한국 신문들의 문체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번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