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 트럼프’는 그렇게 갔습니다.
2017년 8월 22일  |  By:   |  정치, 칼럼  |  1 comment

(거의 매주 이보다 엉망일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현재 미국 대통령이 얼마나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는지 처참하게 드러난 일주일이 지나고,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이야기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자서전 “거래의 기술”을 쓴 토니 슈와츠도 그런 예상을 하는 이들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슈와츠는 자서전을 쓴 만큼 도널드 트럼프의 심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들이 그저 트럼프가 꼴도 보기 싫어서 주문처럼 외는 비난이나 헛된 상상에 빠진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제서야 그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사실 트럼프는 이미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을 생각하면 그렇고, 높을 대로 높은 자기 자존심을 지키는 데 혈안이 돼 대통령이 앞장 서 지키고 받들어야 할 시민적 가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은 이미 대통령으로서 부적격이었죠. 대통령의 직무를 그저 멍청한 연극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법을 지키고 법치를 실천하는 사람에게 대통령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은 남을 대할 때 그야말로 최소한의 예의범절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마음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떠나보냈거나 지워버렸을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준대로라면 사실 트럼프는 한 번도 대통령이었던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이 기준대로라면 몇 번을 양보하더라도 지난 15일을 ‘대통령 트럼프’의 종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이날 오후 트럼프타워 로비에 선 트럼프는 큰 타격을 입고 위기에 빠진 미국의 가치를 돌보는 대신 자신의 자존심에 난 상처를 보듬기에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만천하에 드러난 백인우월주의의 치부를 트럼프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책임감을 무모하리만큼 완전히 저버린 모습은 사실상 사직서를 낸 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대통령직을 사실상 내팽개치면서도 트럼프는 버지니아에 있는 자신의 와이너리 사업을 향한 관심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날 트럼프는 자기가 무얼 해야 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서툴기 짝이 없긴 했어도 어쨌든 바로 전날 그렇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런 한발 물러선 듯한 느낌,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고 그들의 말을 따른 데서 밀려오는 불쾌함, 나약해 보이고 굴종적인 느낌 등은 트럼프로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제일 잘났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는 자존감에 민감하기로는 또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의 트럼프에게는 정말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어쨌든 다시 한번 자존감의 정수를 치켜들며 국가의 가치를 무참히 내동댕이쳤습니다. 어떤 식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운 만큼 개판을 만들어놓은 탓에 뉴스 채널들은 저마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좀 그럴싸하게 포장해달라고 애원해야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뉴스를 내보낼 수도 없을 지경이었으니까요.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트럼프를 두둔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남는 건 트럼프가 항상 사랑해 마지않는 장군들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장군들과도 손발이 맞지 않았습니다. 육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은 일제히 증오를 부추기는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트럼프가 그토록 원성을 사가면서도 절대로 하지 않던 일이었죠. 트럼프는 작은 뒤통수를 맞은 셈인데, 이 과정은 트럼프가 얼마나 무능한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마크 랜들러는 이렇게 썼습니다. (링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칼럼이 아니라 뉴스 분석으로 쓴 기사였습니다. 가치판단이 개입된 의견이라고 해도 저는 이 분석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는 루스벨트부터 레이건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근본적인 임무를 방기했다. 바로 미국이란 나라를 하나로 엮어내는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이를 드높이는 일이다.

수많은 이들이 랜들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점점 굳히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트럼프 본인입니다. 역대 대통령 누구에게도 트럼프에게 했던 식의 질문은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죠.

샬롯츠빌에 모여든 네오나치 백인 인종주의자들과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모인 반대편 시위대를 동일 선상에 두고 양비론을 펴는 트럼프에게 양측에 똑같은 도덕적 기준을 씌우고 있느냐는 질문이 가자 트럼프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난 그 누구에게도 쓸데없는 도덕적 기준 같은 거 요구 안 해요.”

정말 그랬습니다. 사람을 쓰는 데 도덕적 기준을 안 따지고 쓰겠다고 하면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야 상관없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지난 18일 금요일, 트럼프는 마침내 자신의 복심이자 백악관 전체의 물을 흐리는 주범으로 지목돼 온 수석 고문 스티브 배넌을 해임했습니다. 늦었지만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오래전부터 이 정도로는 만회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트럼프 본인이 이 정도로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임이 확실한 상황에서 참모진의 진용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애틀란틱의 데이비드 그레이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찾아온 때 이른 레임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레이엄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거의 모든 대통령에게 레임덕이 찾아오는 건 임기가 끝나기 전 마지막 몇 달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달이 지난 시점에 레임덕이 찾아왔다. 항상 뭐든지 자기는 빨리 배우고 금방 깨우친다고 스스로 자랑하던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면 레임덕도 그렇게 서둘러 경험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마이크 앨런과 짐 반데헤이는 액시오스에 쓴 글에서 대통령이 지금의 성공에 이르는 데 도움을 받았던 거의 모든 개인, 집단 가운데 트럼프와 관계가 체계적으로 파탄에 이르지 않은 이들을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트럼프와 멀어진 이들을 하나하나 열거했습니다. 대중, CEO들, 정보기관, 국정 운영에 협조를 구하면 얼마든지 손을 내줄 법했던 모든 민주당 의원이나 민주당 지지자들, 세계 각국 정상들, 유럽, 그리고 자기가 고용한 참모진까지, 주요한 목록만 추려도 이 정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또 백악관 고위 공직자들이 이미 이번 대통령 임기는 회복할 수 없는 재앙으로 여기고 있으며 트럼프가 기본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의구심이 팽배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운 적이 거의 없는 테네시주 상원의원 밥 코커도 기자들에게 “대통령은 지금까지 안정적인 리더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으며, 국정 운영에 필요한 자질은 사실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는 이 사람의 관심사와 신경이 어떤 것에 쏠려 있느냐의 문제로, 기본적인 자질이나 능력보다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트럼프가 트럼프 타워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대통령 출마를 공표했던 2015년 6월부터 일어난 끔찍한 나날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무엇보다 트럼프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는 사실상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역할이나 책무, 남들이 다 지키는 예절 따위에 자신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수없이 밝혔습니다. 공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도 자신의 납세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고, 자신의 성기 크기를 자랑했으며, 전장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군인의 아버지를 그 가족의 종교를 이유로 비난하고 모욕했습니다. 트럼프가 관여한 거의 모든 순간은 도무지 철이라고는 하나도 들지 않은 사고뭉치 문제아의 장난에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공화당 경선에 이어 대선 본선에서까지 승리하면서 트럼프의 선거 유세는 결과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읽어낸 뛰어난 전략의 승리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캠프를 움직이는 동력은 단 하나, 트럼프 자신의 감정적 욕망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도 오직 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분출하는 장에 불과했던 것이죠.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유권자, 대중과 직접 소통한다는 분석도 억지 포장입니다. 트럼프는 그저 지금 자기가 여과 없이 쏟아낸 감정의 배설물을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퍼 나르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이를 즐겼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미 자기 자신에게 쏠린 엄청난 관심을 더욱 고조시켰으니 실로 대단한 홍보가 된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노리던 바이기도 했죠. 통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선거 전에는 잇단 거짓말과 정치에 관한 모호한 태도에서 그것이 드러났고, 당선된 뒤에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과 저항에서 드러났습니다.

트럼프는 공직자의 책무와 사적인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트럼프의 개인 재산과 부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기존의 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자산을 처분해야 한다는 법 같은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흐릴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에는 경솔하기 그지없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인물이 넘쳐 났습니다. 잠시 스쳐 지나가듯 백악관 홍보수석으로 일했던 앤소니 스카라무치는 수석 고문 배넌을 향해 자기만족에 도취한 일에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렸습니다. 이 말은 기록으로 남았죠. 배넌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행정부 안에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이 자신의 위세에 기가 죽어 오줌을 지리고 있는 겁쟁이들이라고 맹비난했죠. 이 말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중요한 자리는 될 수 있는 한 공석으로 비워두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 트럼프는 한없이 꾸물거렸습니다. 입법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의제를 설정하는 게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를 만나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고 대체하는 법에 관련해 논의해 본 의원들은 한결같이 트럼프가 법은 물론 입법 절차 자체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미국의 핵심 기관과 제도를 지키고 필요하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일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입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기관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사법부, 언론의 자유, F.B.I., 의회 예산처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 아래 방치되고 무시당한 기관은 한두 곳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심지어 보이스카우트도 정치적으로 오염시켜 버렸습니다. 이는 폭군의 모습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직 제가 러시아 문제는 언급도 안 했죠. 어쩌면 가장 심각한 문제일지 모를 러시아에 관한 얘기 말고도 문제가 이 정도입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것이 없습니다. 대신 의무를 차례차례 저버렸습니다. 지난주 보여준 도덕적 참사는 가히 화룡점정이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장군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와 경쟁했던 이들이 사람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극심한 편견과 테러에 반대한다는 점을 잇달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을 보면 이들은 미국의 가치에 호소하거나 지나치게 우쭐해 하지 않았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제임스 호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신 이들은 대통령이 응당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며 무책임한 대통령 때문에 생긴 공백을 메우고 있던 겁니다.

트럼프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나라를 이끄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저는 용어 선택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패했다는 건 최소한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잘 안 됐다는 뜻입니다.

트럼프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특히 그를 좋아하지 미국인 대다수를 위로하거나 영감을 주는 대통령이 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트럼프의 관심은 오히려 그보다 자신의 행동을 끝없이 정당화하는 데 있습니다.

트럼프는 그래서 통합보다는 분열을, 평화보다 전쟁을 택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는 단지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있으나 마나 한 대통령이 되어 대통령직을 공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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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찬영

    언론의 거짓말을 탓하던 인터넷상 트럼프 추종자 ver.Korean들이 그저 단순한 혐오주의자였다는 반증, 시간이 흐르자 쏟아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