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실패해도 괜찮다’는 가치관을 가르치다 (2)
2017년 7월 4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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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전에 스탠포드와 하버드 교수들은 학생들을 관찰한 끝에 “실패 결핍”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수업에서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뛰어난 학생이 일상생활에서 부닥치는 아주 기본적인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걸 보고 만들어낸 말입니다.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신입생 지도를 담당했고 책 “어떻게 어른을 길러낼까”를 쓰기도 한 줄리 리스콧하임스 교수는 “많은 학생이 문제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교수들은 이내 미국대학건강협회가 제공하는 정신건강 데이터에 나타나는 특징과 기본적인 대처 능력 부족으로 고생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관리하기 어려운 과도한 스트레스, 학교 측에서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리 상담 서비스 급증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코넬대학교는 지난 2010년 학생들에게 전공지식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기술도 가르치는 것을 학교의 의무라고 선언합니다. 코넬 학생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내린 조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스탠포드대학교가 “오뚝이 프로젝트(Resilience Project)”를 시작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알 만한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생들이 자신이 받은 참담한 성적표 등에 관해 말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보여주는 겁니다. 리스콧하임스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가리켜 “누구나 비슷한 문제로 애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시도”라고 말했습니다.

이내 대학교를 비롯한 교육기관이 힘을 모아 컨소시엄을 발족하고 재원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비슷한 프로그램이 잇따라 생겨났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성공-실패 마주하기 프로젝트는 거절당한 사연을 위주로 모아 소개했고, 프린스턴대학교의 프린스턴의 관점 프로젝트는 실패담이나 고생한 이야기를 당당히 꺼내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펜실베니아대학교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펜실베니아 학우들의 진짜 표정(Penn Faces)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멀쩡한 척, 행복한 척하는 학내 문화를 지칭하는 단어 “Penn Face”를 비틀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걸 도왔던 에밀리 회벤은 얼마 전에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 높아요. 학업 성적이나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연애나 가족, 친구 관계까지 다 잘하길 바라죠. 그러면서 하루에 8시간씩 달게 자고, 외모는 항상 깔끔하게 빛이 나며 운동도 빼먹지 않고 하는 그런 생활을 틈틈이 소셜미디어에 올려주는 삶을 기준으로 상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삶이란 절대로 그렇게 완벽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주려 했던 거죠.”

오스틴 텍사스 주립대학교 학생들은 “Thrive”라는 이름의 아이폰 앱을 공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앱은 “대학 생활의 좋을 때와 나쁠 때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앱으로 짧은 영상이나 귀감이 되는 문구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UCLA는 학생들이 실패를 극복하는 과정을 도와주는 부처를 만들어 교직원을 뽑았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인문과학대학인 데이비슨 칼리지에는 이른바 “실패 펀드”로 불리는 일종의 보조금 제도가 있습니다. 무언가 창의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은데 돈이 없는 학생이 신청해 프로젝트에 따라 150달러에서 많게는 1,000달러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로, 관련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실제로 작동했는지는 심사하지 않습니다. “실패 펀드” 보도자료에는 “학생들이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통해 배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돕자는 취지”라고 쓰여 있습니다.

스미스 대학교의 학과장이자 학생 생활 담당 부총장인 도나 리스커는 말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모두가 어렸을 때 실패에 관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다고 생각해 왔어요. 야구 타석에 들어서는 누구나 삼진을 당할 수 있고, 학생회 선거에서 당연히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 거라고 생각했죠. 18살이나 됐는데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학생이 어디 있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실패를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많은 대학교가 실패란 무엇인가에 관해 학생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일종의 교육을 통한 치유 혹은 치유를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미스 대학교의 시몬스 씨는 소녀들의 자존감에 관한 책을 두 권 썼고, 내년에는 세 번째 책인 “지금 너의 모습으로도 충분해(Enough as She Is)”를 펴낼 예정입니다. 그녀는 대학들이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준을 새로 세우고 있다고 진단햇습니다.

“대학들은 학생이 졸업논문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듣고도 주저앉지 않고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요즘은 직장도 자주 옮기고, 하는 일도 자꾸 바뀌며, 단기간에 처리하는 프로젝트 위주로 일이 진행되거나 프리랜서, 소규모 스타트업이 많은 세상이잖아요. 그럴 때일수록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능력이 정말 중요한 인생의 기술이랄까요.”

대학교에는 낮잠 전용 간이침대 혹은 소파도 있고,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작은 동물원도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 실패하는 법까지 가르친다고 하니, 지난해 <사이콜로지 투데이>가 표지 제목으로 던졌던 질문을 여러분도 하게 될 겁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학교가 고등 교육을 가르치는 지성의 전당에서 정신 건강 수련원 같은 곳이 되어버린 걸까?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말합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자체는 근본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를 치료하고 치유하기 전에 왜 그토록 심각한 문제가 될 만큼 학생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건지 그 원인을 좀 더 살펴보고 싶기는 합니다.”

연구진은 어렸을 때부터의 자녀 교육과 전반적인 사회 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노심초사한 나머지 과잉보호를 일삼는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가 많은 세상입니다. 스미스 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장인 레베카 쇼는 지금 대학생들이 “누구나 집에 가면 어렸을 때 어딘가에서 받은 트로피들이 몇 개씩 있는 세대”라고 설명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명문대학교 입학에 초점을 맞추고 성장한, 특히 중산층 이상 가정의 아이들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목표를 세워놓고 멈추지 않는 러닝머신 위를 달려왔습니다. 선행학습에 익숙한 아이들은 항상 낙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시몬스 씨는 이를 영화 “헝거 게임”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에 비유했습니다.

경제 전반에 대한 걱정은 막막함을 배가시킵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도 유효한 건지, 졸업 후에 일자리를 과연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은 특히 집안에서 처음 대학 교육을 받는 학생이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비는커녕 집에 생활비를 부쳐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아니면 그저 ‘내가 경쟁을 뚫고 입학한 우수한 학생이 아니라 다양한 선발 방식 가운데 운이 좋게 맞아떨어진 학생 아닐까?’ 같은 식의 괜한 자괴감만으로도 충분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저는 저소득층 가정 출신이에요. 무척 낙후된 저희 동네에 이웃은 대부분 흑인밖에 없었고요. 그래서 더더욱 잘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오곤 해요.”

스미스 대학교 3학년 학생인 19살 아라비아 시메온의 말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언론정보대학 학부교육 부처장인 에이미 조던은 우등생 소리를 듣던 많은 학생이 “제일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이란 꼬리표를 잃게 되면서 일종의 조정 과정을 거친다고 진단합니다. 스미스 대학교에서는 이를 “특별한 눈송이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다들 고등학교 때는 소위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었죠. 학교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다른 것도 다 학교에서 최고였을 테니까요. 특별 대우를 받고 자랐죠.”

20살 카이 셜리는 학교 카페에 앉아 말했습니다. 졸레카 모시아와 시메온, 랭카스터가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왔어요, 자, 고등학교 때처럼 다시 돋보이는 학생이 되고 싶죠. 그런데 대학교에 와 봤더니 다 저처럼 특별한, 대단히 뛰어난 친구들만 모아놓은 거예요. 전부 다 특별하죠. 그러다 보니 결국 누구도 특출나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소셜미디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나 논리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대학교에서, 아니 솔직히 인생 전체를 통틀어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과 사진을 보다 보면 우리는 또 너무나 쉽게 ‘나만 빼고 전부 다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2학년인 19살 제이시 그릴리가 말했습니다.

여기에 바쁘게 사는 것을 추켜세우는 문화도 한몫합니다. 문화랄 것까진 없다고 해도 적어도 어쨌든 ‘지금 상태’를 남들에게 드러내도록 해놓은 것 자체가 이런 생각을 부추깁니다. 스미스 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의 스테이시 스타인박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거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 인생은 가치 없는, 한심한 인생이라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았죠. 어떤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으로 간주될 정도예요.”

시몬스 씨는 이를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부릅니다. 시몬스 씨는 아이스크림과 빙고 게임으로 학생들을 불러모은 뒤 교내 잔디밭에 둘러앉아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법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대학생활문화원을 찾은 학생들은 먼저 아이스크림 선데를 집습니다. 여기의 빙고 게임은 여느 빙고 게임과는 조금 다른데, “스트레스 올림픽”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임입니다. “오늘 밤까지 보고서 20장 마감”, “할 게 너무 많아서 끼니도 거름”, “너무 힘들어서 좀비 된 듯” 같은 식의 카드가 쓰여 있고, 학생들은 자신의 상태에 따라 빙고 카드를 고릅니다.

20살 3학년 학생 케이시 헤콕스는 “누가 더 고통스럽게 사는지 경쟁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합니다.

“내일 시험이 한꺼번에 3개나 몰려서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난 시험 5개야, 오늘 하루종일 에너지 드링크 말고 아무것도 못 먹었어, 게다가 집에 강아지가 아파서 공부도 잘 안 돼.’라고 하는 식인 거죠.”

여름방학을 몇 주 앞둔 시점은 이미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극에 달해 있습니다. 여름방학 인턴십이나 졸업 후 일자리 때문에 준비해야 할 원서, 추천서, 네트워킹 등에 이미 학생들은 진이 빠져 있죠. 한 군데도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하죠? 아니면 합격은 하더라도 정말 가기 싫은 곳뿐이라면 어쩌죠? 21살 2학년 모시아 씨는 여름방학 인턴이나 방학 때 경험을 쌓는다고 몇 달간 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익숙지도 않을뿐더러 그 과정도 너무 겁이 났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 친구들과 학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이 난관을 헤쳐갈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야 했죠. 도움을 청하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수도 없이 떨어지고 거절당하는 건 정말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정말 무서웠죠.”

랭카스터 씨도 말했습니다.

“불합격 통보를 하나하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근심걱정을 원 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겁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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