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복수(復讐)의 이치
2017년 4월 5일  |  By:   |  과학  |  1 comment

복수의 이야기는 항상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시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과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자 이에 격분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가 모든 병력을 이끌고 트로이에 쳐들어가 전쟁이 났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결말입니다.

복수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킬레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지간인 파트로클루스가 전사하자, 아킬레스는 파틀로클루스를 죽인 이를 찾아 물불 안 가리고 복수에 나섭니다.

복수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만큼 오래됐을 겁니다. 주인공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다룬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을 비롯한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르기까지 복수는 수많은 문학 작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나를 못살게 굴거나 괴롭힌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앙갚음하는 상상을 합니다. 복수심을 마음속에만 두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상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는 순간 우리는 분명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왜 복수를 꿈꿀까요? 학자들은 복수의 원리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복수의 장점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복수심은 무척 강렬한 감정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어떤 행동이든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애미 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로프는 10년 넘게 복수와 용서의 감정을 연구해 왔습니다.

“복수심은 인간의 삶에서 무척 흔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화가 나고 지금 이 아픔과 상처를 갚아주겠다는 생각은 어느 사회에 속한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전체 살인의 20%, 학교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고의 60%가 복수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복수는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두고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언론은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복수”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급속한 세계화 흐름 속에 도태되고 버림받은 이들이 제동을 걸었다는 겁니다.

사람의 공격성에 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술에 취하거나 모욕을 당하는 상황, 자기애가 강한 성격 등 공격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에 관한 연구도 많습니다. 반면 복수심에 관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사실 폭력적인 행동을 원인부터 찬찬히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의 데이비드 체스터는 처음에는 사람의 공격성을 연구하다가 이내 폭력의 이면에 훨씬 복잡한 역학이 있음을 깨닫고 연구 주제를 바꿨습니다. 그는 어떤 것에 자극을 받아 폭력을 일으키기까지 그사이에 나타나는 감정을 일종의 “심리적 매개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어떤 식으로 모욕을 느끼고 거기서부터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까지 어떻게 감정이 변하고 행동이 나타나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는 앙갚음하겠다는 욕망이 핵심 기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공격적인 행동의 원리를 이해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복수심에 관해 연구하게 됐죠.”

체스터 교수는 먼저 복수심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켄터키 대학교의 네이선 드월 교수와 함께 그는 사람들이 수모를 당하거나 사회적으로 거부당하면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거부당했다고 느낀 뒤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뇌에서 고통과 관련된 영역이 가장 활성화됐습니다. 체스터는 “나를 위협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대상에 공격적으로 앙갚음하는 경향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채택한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후속 연구에서는 놀랍게도 감정적인 고통이 쾌락이라는 감정과도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즉, 처음에 거부당하고 수모를 겪는 건 물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나를 힘들게 한 대상에 복수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으로 금세 대체됩니다. 심지어 복수하는 상상을 하면 뇌 안의 보상회로로 알려진 중격의지핵이라는 곳이 활성화됩니다. 어떤 일에 자극을 받아 화를 내는 사람들이 공격적인 모습을 띠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했을 때 향락적인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수란 실제로 달콤한 행위인 셈입니다.

공격성과 쾌락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심리학의 아버지와도 같은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공격적으로 행동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수심이 특유한 방식의 쾌락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 건 최근의 일입니다.

이 현상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고자 체스터와 드월 교수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고, 그 결과를 지난달 학술지 <성격과 사회심리>에 게재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을 주고받는 컴퓨터 게임에서 고의로 배제되고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을 받은 참가자들에게 가상의 밀짚 인형에 원하면 침이나 바늘을 꽂을 수 있게 했습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배제된다고 느낀 참가자들이 인형에 훨씬 많은 침을 찔렀습니다. 처음에는 온라인상에서 실험을 했고, 사람들을 실험실로 불러 모아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실에서는 가상의 밀짚 인형에 침을 꽂는 대신 참가자들은 아주 듣기 싫은 소리를 상대방에게 내지르는 방식으로 일종의 복수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상대방은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였지만,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번에도 게임에서 배제됐다고 느낀 참가자들이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소음을 더 오래 틀어주는 것으로 복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수심이라는 감정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하고자 체스터와 드월은 참가자들에게 감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약을 한 알씩 먹였습니다. (사실 이 약은 그냥 비타민 보조제로 위약 효과(placebo effect)를 내고자 한 실험의 일부였습니다) 위약 효과는 상당히 강했습니다. 약을 먹지 않은 참가자들은 다른 실험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복수하려 들었지만, 약을 먹은 참가자들은 복수에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복수해 봤자 아무런 쾌락도 느끼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복수심 자체가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결과를 종합해 내린 결론은 놀랍습니다. 즉, 복수라는 행위나 복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쾌락을 느낄 뿐 아니라 사람들이 복수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정확히 그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체스터는 결국 복수란 감정을 통제하는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됐는데, 무언가 거부당해 상처받은 실험 참가자에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들은 감정 테스트에서 무언가에 거부당한 적 없는 사람들과 비슷한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실험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아직 복수심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효과가 며칠 뒤, 몇 주 뒤에 어떤지에 관해 장기적으로 살펴본 연구는 없습니다. 아직 논문으로 게재되지 않은 초기 실험 결과를 보면 복수를 계획하는 사람이 얻는 쾌락의 감정은 순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많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좋은 건 잠깐인 거죠. 쾌락이 오면 이내 중독처럼 보이기도 하는 감정의 순환이 일어나요. 다음번에는 처음 느꼈던 것보다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거죠.”

체스터 교수의 설명입니다. 아마 쾌락을 좇아 복수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는 참담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지네딘 지단이 2006년 자신의 선수생활 마지막 월드컵 결승전을 그런 식으로 망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단이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찌와 말다툼을 벌이다 분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박치기를 해버린 장면은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아는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정적 리스트를 만들어 싫어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하나하나 망쳐놓으려 했던 것도 비슷한 사례로 기억될 만합니다. 결국, 도를 넘은 정치공작과 권모술수를 일삼은 닉슨은 사실상 강제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며 정치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파괴적인 ‘복수’와 ‘복수심’이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계속 살아남고, 오히려 정교하게 강화된 걸까요?

이를 진화상 오류로 치부한다면 정답에서 한참 빗나간 겁니다. 오히려 복수는 대단히 유용합니다. 맥컬로프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복수에 집착해봤자 결국 손해 보는 건 그 자신이라고 말하죠. 예를 들어 인간관계가 다 망가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복수심이 드는 것 자체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복수심이 들어도 복수에 나섰을 때 잃게 되는 것이 많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 보니, 결국 복수심이라는 감정은 (무모한 파괴와 살상의 악순환을 막아)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입니다.”

수감자들 사이나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 사람이 어떻게든 내게 복수할 게 뻔한 그런 상황 말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당한 건 반드시 갚아 주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다면,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겁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레버넌트의 주인공 휴 글래스는 불타는 복수심으로 불사신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입니다. 뼈는 부러지고 상처가 깊이 팬 몸을 이끌고 그는 오직 아들을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적진에 뛰어듭니다.

복수하겠다는 위협만으로도 상대방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다고 맥컬로프는 말합니다.

“해코지를 당했을 때 여기에 어떻게든 반응하는 사람과 뺨을 맞아도 그저 가만히 있으며 나쁜 놈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만만해 보이겠어요?”

맥컬로프는 복수심도 배고픔과 비슷해서 무언가를 먹어야 식욕이 사라지고, 가려운 데를 긁어야 가려움이 멈추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복수의 목표를 달성해야 사라지거나 억제되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만약 복수심이 궁극적으로 내가 다치거나 상처받는 걸 억제하기 위해 발현되는 감정이라면 그 효용이 대단히 높은 셈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복수의 칼을 갈도록 부추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맥컬로프는 말합니다.

“우리는 복수심이라는 게 반드시 괴로움과 번민 끝에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나타나는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목적은 다른 데 있다는 걸 이해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실제로 앙갚음을 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달래줘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복수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2006년 발표된 한 연구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대체로 복수심을 통해 쾌락을 느낍니다. 한 실험에서 사기를 친 상대방이 전기 충격을 받는 장면을 봤을 때 여성보다 남성의 뇌에서 보상 회로가 훨씬 더 활발하게 작동했습니다. 2008년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 UC 버클리의 오즈렘 아이둑과 동료들은 거부당하거나 상처받은 뒤에 특히 폭력적인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은 유형의 성격이 있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성격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거부당하거나 상처받는 데 상당히 민감합니다. 이들은 과거의 경험에 비춰 자신이 거부당할 확률이 무척 높다고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동시에 신경증이나 우울증 증세가 더 자주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사실 상처받을 만한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이들은 자신이 거부당했다고 느끼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부당하는 것이 실존적 위협이다 보니 자기가 상처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정신적으로, 생리적으로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부당하고 상처를 받으면 거의 자동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띠며 복수에 나섭니다.

거부당하거나 상처받는 데 민감한 사람들이라고 항상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여기에 반응하는데, 자해도 다른 방식에 포함됩니다. 자해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자기가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공격성을 띠는 것도 그런 반응의 일종입니다.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익혀 충동을 억제하곤 합니다. 쉽게 공격적인 태도로 보복하려 드는 사람들은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감정을 극복하는 법을 비슷한 방식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체스터와 드월 교수는 복수에 관한 연구를 하며 개별 참가자들의 뇌를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이들은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이들의 뇌에서 측면 전두엽 피질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측면 전두엽 피질은 뇌에서도 추론과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은 부위로 알려졌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인간도 반드시 본능에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정교한 전두엽 피질을 통해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더 사회적으로 이로운 결과를 내도록 우리가 진화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든 모르든 관계없이 희망은 있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괴롭히거나 모욕을 줘서 복수를 계획하게 되면 복수를 상상하는 그 순간은 달콤하지만, 그 쾌락이 오래 지속하길 기대하지는 마세요. 대신 그런 감정이 드는 대단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시면 됩니다. 어쩌면 그 감정 덕분에 우리 선조들은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의 덫에 빠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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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준학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