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으로 인한 대량 실업 사태, 보편적 기본소득이 해결책일까요?
2017년 4월 4일  |  By:   |  경제, 과학, 세계, 칼럼  |  3 Comments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업의 문제는 이 시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붙은 지 오래지만, 실질적인 실업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지는 사태가 실제로 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정부와 사회 각계에서는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현재 제한적이나마 논의되고 있는 대책 가운데 핵심이 되는 개념은 보편적 기본소득입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수십 년간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서 언급되어왔죠. 하지만 보편적 기본소득이 과연 빠른 기술 발전에 따른 대규모 실업 사태 또는 일시적인 노동 시장 혼란에 대한 답일까요? 따져볼수록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기본소득은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소득으로 축소해 버립니다. 물론 생계유지는 노동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노동의 사회적인 가치 역시 매우 중요하죠. 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자존감의 기반이며 우리가 사회 안에서 인생을 꾸리고 역할을 설정해갈 수 있는 틀을 제공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노동시장을 떠나 오랜 기간 기본소득에 의존해 살게 되면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집니다. 기술 발전이 빨라질수록 기술이 쓸모없어지는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영영 되찾지 못한 채 영구적으로 기본소득에 의존하는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이는 다시 불평등의 문제를 심화시킵니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일부가 큰 부를 얻고 나머지 절대다수가 뒤처지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보다 더 벌고 싶은 사람은 가끔씩 일을 하면 되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대량 실업이 실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끔씩 일을 하는 옵션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본소득에 의존하는 집단과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는 소수의 엘리트로 나누어진 구조가 굳어질 것입니다. 기본소득 논의는 대개 기타 복지 정책의 폐지와 일률 과세를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상류층은 뒤처진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입니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또한 희소한 자원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직접 지급하든 세제 혜택의 형태로 지급하든, 현존하는 세금 제도를 벤치마크로 삼는다면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돈을 회수할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보편적”인 소득 제공이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유럽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할 경우, 이민자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과 EU의 차별 금지 및 이동의 자유 원칙이 충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실업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음 다섯 가지를 기초로 정책을 수립한다면 보다 포괄적이고 유연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선 현재 경제 상황에 맞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정보를 암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정보를 지식으로 바꾸고 창의적, 분석적, 사회적 기술을 쌓을 수 있도록 아이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단순한 기술은 금방 옛것이 되더라도, 창의력이나 적응 능력, 평생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은 가치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만일 대량 기술 실업 사태가 일어난다면 남아있는 일에 대한 재배치가 우선입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자신의 손자 세대가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게 되리라 예측한 바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나마 이런 식의 조정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 정책 입안자들은 기존의 노동시장을 보완할 수 있는 일자리 보장 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직업이 사라진 자리를 이런 식의 보장된 유급 활동이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고 자신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가 “최후의 고용주” 역할을 함으로서, 사람들에게 재교육을 받고 기술을 숙련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이런 제도 속에서 노동의 가치는 그 내용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전통적인 일자리가 사라지고 과도기적인 실업 상태에 놓이더라도 우리 인간이 계속해서 사회적으로 이로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이런 제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과세 기준을 넓히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모든 일을 로봇이 하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 즉 “로봇을 누가 소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마지막 핵심 사안으로 이어집니다. 자본 소유의 민주화 문제죠. 만일 로봇을 소유한 자가 디지털 신세계의 승자라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로봇 소유권의 지분을 나눠 가진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기업 차원에서는 직원들이 주식을 보유하듯 로봇 소유권을 나눠 가져서 급여에 대한 의존을 낮춰가도록 해야 합니다.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자본 이익을 재사회화할 수 있는 금융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 기금이나 국부펀드와 같은 식으로 운용해 일자리 보장 제도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자유 의지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현실화된다면 현재 우리가 집단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많은 삶의 부분이 개인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위에서 제시한 정책안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그늘의 위험에 대비하면서도 사회 통합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디지털 혁명을 대비하는 정책 논의를 이어가야 합니다.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은 도마 위에 놓인 여러 해결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그다지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문제를 타개할 다른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소셜 유럽)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