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가 비정상일까? (2)
2017년 3월 29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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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분야에서 정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일어나곤 합니다. 책 “불법 여가(Illegal Leisure)”의 저자들은 문화 분야에서 일어난 정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젊은 세대의 마약 복용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꼽습니다. 연구진은 5년 동안 마약을 복용하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둘러싼 사회의 인식을 연구해 그 결과를 책에 실었는데, 대마초를 포함해 강력한 환각제 LSD나 암페타민, 엑스터시까지 포함한 마약을 복용한다고 해서 사회나 제도권에 반항하는 젊은이 취급을 받는 시절은 분명 지났습니다. 마약은 이제 하나의 여가 활동으로 여겨집니다.

마약을 복용하는 이들은 이제 더는 저항 문화의 상징이나 미친 사람, 나쁜 사람 취급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정상적인 사람들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판단상의 착오가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흐지부지됐다가 나중에 끔찍한 재앙의 씨앗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참사가 그런 사례인데, 당시 챌린저호는 발사한 뒤 73초 만에 폭발해 탑승 선원 일곱 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챌린저호 사고 원인 특별조사위원회는 나중에 1월 플로리다의 낮은 기온 때문에 챌린저호 고무 오링(O-rings)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안일했던 판단이 참사로 이어진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왕복선을 검사, 시험하던 중에 한 번은 원래 있던 고무 오링이 부식된 상태였는데도 시험 가동에서 아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어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음번 비행에서도 문제가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굳어졌죠. 지난번에 문제가 없었으니 이제는 너무 빡빡하게 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퍼진 겁니다.”

직원들이 문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안전 규정을 엄연히 어겼는데도 문제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을 흔히 사회적 일탈의 일반화(social normalisation of deviance)라고 부릅니다. “챌린저호 발사 결정(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보고서를 쓴 사회학자 다이앤 본은 이런 일탈이 일상적으로 조직 문화에 스며들었다고 지적합니다.

때로는 새로운 규범을 통해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고자 의식적으로 정상화를 시도할 때도 있습니다. 학습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향한 사회적인 시선을 개선하고자 기울였던 노력이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일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상화의 원칙을 처음으로 고민한 건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1959년 덴마크 정부는 학습장애가 있는 국민도 다른 국민과 최대한 비슷한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합니다.

스웨덴의 벵트 니르제 박사는 이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한데, 그는 196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숱한 차별을 받던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니르제 박사의 노력 덕분에 전 세계의 사회복지 제도에 엄청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한 번 입원하면 오랫동안 병원에 가둬놓듯 장기 입원하는 관행이 사라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도 개선됐습니다.

북유럽에서 성과를 낸 아이디어는 미국에도 이내 소개됐지만, 실제 사고방식의 변화가 나타나기까지는 10년도 더 되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1974년 위스콘신 주 밀워키에서 제2회 다운증후군 환자 권익 향상을 위한 총회(Down’s Syndrome Congress)가 열렸습니다. 미국 장애인 권익 향상에 많은 공을 세운 윌리엄 브론스톤은 총회에서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동물이나 사물, 혹은 채소처럼 취급받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있다며 장애인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용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나 기대치를 높이고 품위를 더하며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이름이나 표식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브론스톤은 장애인을 지칭하는 단어로 “저사람들, 저능아, 다르다, 소수”와 같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 대신 “우리, 우리의, 나, 정상, 전체, 좋은, 똑똑한, 대다수, 적응하는” 처럼 긍정적인 단어를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환경을 보호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데도 이른바 태도의 정상화 전략이 효과적으로 쓰입니다. 2011년 “친환경 습관 만들기(Making green normal)”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킹스톤 경영대학원의 연구진은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행동을 양식 있는 사람 몇몇만 하는 행동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이미 습관을 들인 주류의 생활습관이라고 홍보하고, 반대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은 이상한 행동으로 몰아세워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몇십 년 전보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진 건 우연이 아니라 재활용이 왜 좋은지 꾸준히 홍보가 됐고, 사람들이 환경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9~10년 영국 가정에서 배출된 쓰레기의 40%가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됐습니다. 1983~84년만 해도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 가운데 재활용되는 쓰레기는 1%도 안 됐습니다.

평범한 삶,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은연중의 압박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본적으로 남들처럼 평범한, 정상적인 생활을 지향합니다.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다 외려 덫에 빠지기도 합니다. 평범함의 탈을 써서는 안 될 것이 정상화되는 일은 경계해야 하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라는 것이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항상 변하기도 합니다. 이상해 보이는 많은 것들은 이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그저 반짝 유행이라 치부하고 신경 쓰지 않기에는 정상화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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