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극우파가 중세시대에 매료되는 이유
2017년 1월 4일  |  By:   |  문화, 세계, 정치  |  1 comment

상당히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중세시대 역사와 현대 정치에 모두 열정적인 관심을 갖는 사람은 드문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를 제외하면, “중세 덕후”들은 주로 좌파들이었죠. 막스를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중세 토지 소유 문제에 관심을 갖거나, 환경운동가가 천연재료 염색법을 찾아보는 식이었죠.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역사적 주제는 미국 건국이나 노예제, 나치당의 득세 등 비교적 최근 이슈들이었습니다.

변화가 감지된 것은 9/11 테러 이후였습니다. 미국의 극우파가 서구가 하나의 문명으로 뭉쳐 동양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중세시대와 르네상스시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세 십자군의 이미지를 19세기부터 차용해 온 유럽 극우파들의 존재는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부추겼죠. 이는 생업으로 중세시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불편한 현상입니다.

중세시대에 대한 열광은 최근 몇 년 사이 폭증한 “대안우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부터 전통적인 인종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십자군의 구호 “신의 뜻대로(Deus vult)”를 외치는 갑옷입은 중세 군인의 밈은 레딧(Reddit)에서부터 4챈(4Chan)에 이르기까지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십자군 복장을 한 트럼프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죠. 반이슬람 웹사이트가 카를 마르텔의 이름을 걸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하드주의자들이 이미 영화나 비디오게임에 등장하는 중세 무슬림 전사들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음을 떠올려보면, 서구 극우파의 중세에 대한 열정은 중세시대와 현대 기술을 융합한 IS에 대한 비뚤어진 동경 같기도 합니다.

중세시대에 별 관심이 없거나, 현대 전에 있었던 비위생적인 시기 정도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에게 이런 현상은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류나 좌파 문화 역시 이미 중세시대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 재연 활동이나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의 인기를 떠올려보세요. 이런 중세 열풍이 일종의 반동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요? 대안우파의 추종자들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자 하는 보수적인(혹은 보존적인) 본능을 갖고 있고, 인종적 단일성에 대한 열망도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요. 브레이트바트(Breitbart)의 편집자인 마일로 이나폴리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죠.

중세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세 연구에 대한 인기 블로그를 운영중인 시에라 로무토(Sierra Lomuto)는 “중세 연구자들에게는 우리가 생산하고 확산하는 지식이 현대 사회에서 비백인이나 소외된 집단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지 않도록 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대안우파가 꿈꾸는 동질적인 세계와 중세시대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빈번하게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인종적, 종교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한 도시, 왕국 내에서 어울려 살았음을 보여주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진보건 보수건 일단 전통적인 요소에 매력을 느껴 중세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다문화주의 등 우리가 현대적인 것으로 알고있는 개념 중 다수가 중세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에서 “다문화적 중세”라는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시린 칸모하마디(Shirin Khanmohamadi) 교수의 설명입니다.

이처럼 보다 정교한 학계의 연구는 일부 학구적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생각을 바꿀 기회를 선사하기도 합니다. 백인 우월주의 웹커뮤니티 스톰프론트(Stormfront) 창립자의 아들은 실제로 대학원에서 중세 시대를 연구하면서 아버지의 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나 비디오게임을 통해 중세를 접한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대중문화 내에도 낭만화되지 않은 중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중세시대의 역사가 더 많이 알려지면 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가 단일성이 아닌 논박의 시대였다는 사실, 순응하지 않는 태도가 일탈이 아닌 더 나은 것을 향한 갈망이었던 시대였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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