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언론 매체의 속보 처리 방식, 달라져야 합니다
2016년 6월 13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이번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은 뉴스 매체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10시 50분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각, 사망자 수가 20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던 시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확신에 가득 찬 정파적 선언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총기 규제를 주장하던 쪽에서는 이번 사건이 총기 규제 입법 실패로 인한 참사라고 말했고, 이슬람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슬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동성애자 권리 단체는 LGBT 커뮤니티를 향한 증오 범죄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스 매체는 “비난의 정치”를 확산시키는 확성기 역할을 했습니다. 폭스뉴스에 등장한 한 대테러 전문가는 이번 사건이 증오 범죄가 아니라고 못 박으면서, 아직 성명을 내지도 않은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정치적 올바름을 내려놓으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이 글로벌 지하드의 일환으로 전개된 “군사 공격”이라고 단언했죠.

CNN에 출연한 마르코 루비오 의원도 이번 사건이 명백한 테러라고 말했습니다. 사건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시점이었음에도, “우리가 한 번도 대면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라고 말했죠.

일부 매체에서는 이번 사건이 게이프라이드 주간에 게이 클럽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나, 여러 매체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습니다. 총기 규제와 이번 사건을 연결하는 보도 역시 일부 매체에서 등장했지만, 거의 언급하지 않은 곳도 많았죠.

소셜미디어상의 싸움도 곧 폭발했습니다. 버즈피드의 제임스 볼은 트위터를 통해 “동성애혐오자, 이슬람혐오자, 반유대주의자들이 최악의 코멘트 경쟁을 벌일 날”이라며 “오늘 같은 날은 인터넷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그의 충고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알려진 즉시 인터넷상에서는 각자의 성향에 따른 근거 없는 비방과 공격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CNN에서 21년 근무한 프랭크 세스노(Frank Sesno)는 보도에 있어 큰 사건 발생 직후의 시간이 가장 어렵고 위험하다며, 확인된 사실이 부족한데도 매체들이 방송 시간과 지면을 메꾸기 위해 “추측과 추정”을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매체의 시청자와 독자가 무엇을 듣고 보기를 원하는가에 의해 휘둘린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돈입니다. 미국언론연구소(American Press Institute)의 톰 로젠스틸(Tom Rosenstiel) 소장은 경영상의 이유로 많은 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매체가 뉴스를 “보도하기보다는 이용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사건이 “총기 규제를 주장하기 위한 도구” 또는 “테러에 강경 대응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요? 매체 소비자들이 최대한 회의적인 자세로 뉴스를 걸러 듣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요?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 디지털 저널리즘 센터의 에밀리 벨(Emily Bell) 센터장은 그래도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의 매체들이 무분별한 속보 추구의 위험성과 팩트 확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후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테러 건에서 이때의 교훈이 빛을 발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이같은 신중한 접근이 눈에 들어옵니다. CIA 출신으로 CNN에서 일요일 아침 논평을 맡고 있는 필립 머드(Philip Mudd)는 이번 사건을 파리 테러와 나란히 놓으려는 움직임에, 아직 그렇게 볼 근거가 없다며 경계심을 보였습니다. NPR은 최근 청취자들에게 자사의 속보 정책을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벨 센터장은 이런 사건에 적용할 프로토콜이나 모범 답안이 아직 미국 언론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큰 사건을 성숙하게 소화하는 방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언론의 보도 행태가 개선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슬프게도 배움의 기회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찾아오겠지요.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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