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거는 안전합니까? (2)
세풀베다는 수도 보고타에서 북쪽으로 차로 여덟 시간 거리에 있는 부카라망가(Bucaramanga)라는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엄마는 비서로 일했고, 아빠는 코카인을 추출하는 코카 나무보다 더 나은 작물을 재배하라고 농민들을 설득하고 다닌 활동가였습니다. 마약 조직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가족은 늘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수시로 사는 곳을 옮겨야 했습니다. 세풀베다가 15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은 이혼했습니다. 학교를 중퇴한 세풀베다는 아버지를 따라 보고타에 와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지역의 기술 학교에 입학한 세풀베다는 친구를 통해 코딩을 배웁니다.
홍보 담당 일을 하던 세풀베다의 형은 2005년 당시 선거를 치르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정부 여당을 돕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친미주의자로 군비를 증강해 반정부 게릴라 콜롬비아 혁명군(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과 성공적으로 맞서 싸운 우리베 대통령은 세풀베다 형제의 영웅이었습니다. 당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세풀베다는 자신의 랩탑 컴퓨터를 꺼내 바로 무선 네트워크에 접속한 뒤 당의 선거 전략을 짜던 렌돈의 컴퓨터에서 우리베 대통령의 업무 일정표와 앞으로의 일정을 순식간에 빼냈습니다. 세풀베다는 크게 노한 렌돈이 그 자리에서 자신을 고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렌돈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선거는 온갖 부정으로 얼룩졌습니다. 대체로 유권자에게 금품을 주고 표를 매수하는 고전적인 방법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개혁의 바람이 불면서 선거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조가 어려운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중립적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를 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중립적이고 좀 더 투명하다고 부를 수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식의 선거방식이 수입된 겁니다.
이때 렌돈은 이미 이전투구식 네거티브 선거, 소문 퍼뜨리기의 달인으로 선거판에서 인정을 받으며 막 성공 가도에 오르던 참이었습니다. 2014년 엘살바도르의 카를로스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은 렌돈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부정 선거와 흑색선전을 일삼는 몸통으로 지목하며 비난했습니다. 렌돈은 플로리다 법원에 명예훼손 혐의로 푸네스 대통령을 고발했지만, 법원은 푸네스의 발언이 공무상 발언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며 고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베네수엘라 출신으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란 렌돈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고국인 베네수엘라 대통령 후보를 돕기 전까지는 광고회사에서 일했습니다. 2004년 선거에서 당시 차베스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비난하며 베네수엘라를 떠난 뒤 렌돈은 아직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지 않았습니다.
세풀베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첫 해킹 임무가 우리베의 상대편 후보 웹사이트에 들어가 후원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확보하고 그 이메일 주소에 허위 정보를 무차별 살포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일로 세풀베다가 받은 돈은 한 달에 1만5천 달러로, 웹디자인을 할 때보다 다섯 배나 월급이 뛰었습니다.
세풀베다는 렌돈의 모든 것에 이내 매료됩니다. 고급 승용차도 여러 대, 으리으리한 명품 시계도 여러 개, 아주 값비싼 코트도 여러 벌을 갖춰놓은 렌돈은 세풀베다처럼 완벽주의자였습니다. 그와 일하려면 더 일찍 나와서 더 늦게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보상이 따랐습니다. 세풀베다도 당시 일이 정말 좋았다고 회상합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젊었죠. 돈 많이 받고 여기저기 여행하며 견문도 넓힐 수 있는 이 일을 마다했을 리가 없었죠. 어린 제게 이 일은 정말 완벽한 일이었습니다.”
돈이나 일 만큼 중요했던 건 자신이 지지하는 우파 정치인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풀베다에게 렌돈은 천재적인 수완가이자 멘토였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자 무예를 몸소 익힌 렌돈은 공개석상에선 대개 검은색 옷만 입습니다. 때로 사무라이의 예복을 입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웹사이트를 보면 렌돈은 스스로 베일에 싸인 위협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일 처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 필요할 땐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저격수,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찾는 가장 효과적인 해결사
세풀베다도 렌돈의 손과 발이 되어 수행했을 일들이 쌓이고 쌓여 이와 같은 평판을 낳았을 겁니다.
렌돈은 해커들이 아예 정치과정에 통합되어 기능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비판하는 광고를 싣고 상대방을 조사한 뒤 상대방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낮출 방법을 찾아 수행하는 일 등을 해커들이 잘해냈기 때문이죠. 세풀베다는 유권자들이 TV나 신문에 나오는 전문가의 말보다도 오히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소셜미디어상의 여론을 더 신뢰한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세풀베다는 수많은 유령 계정을 만들어낸 뒤 이를 통해 소셜미디어상의 여론 풍향계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셜미디어 정복자(Social Media Predator)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소프트웨어가 하는 일은 유령 트위터 계정들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입니다. 필요에 따라 이름부터 프로필 사진, 간단한 이력까지 손쉽게 바꾸어내는 이 소프트웨어를 통해 세풀베다는 체스판의 말 옮기듯 쉽사리 트위터상에 이슈를 띄우고 또 묻을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도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더 쉽게 믿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저의 재주로 어떤 가상의 일이라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도록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