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선거는 안전합니까? (1)
2016년 4월 5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멕시코 대선이 치러진 2012년 7월 1일. 개표가 진행되면서 결과의 윤곽이 드러난 자정 무렵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는 대선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1929년부터 71년간 내리 집권하다가 2000년 권력을 내줬던 제도혁명당(PRI)이 백만장자 변호사 니에토를 앞세워 정권 탈환에 성공한 겁니다. 멕시코 국기의 색깔인 빨강, 초록, 하얀색 종이가 꽃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선 니에토는 마약 범죄, 부패와 싸우며 정치가 투명한 멕시코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같은 시각, 니에토 당선의 숨은 공신 안드레스 세풀베다(Andrés Sepúlveda)는 멕시코시티에서 3천 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부촌 치코 나바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 여섯 대 앞에 앉아 개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사람인 세풀베다는 머리는 삭발했고 염소수염을 길렀습니다. 뒤통수에는 암호화한 QR코드를 문신으로 새겼고, 뒷목에는 “</head>”, “<body>”라는 글자를 새겨넣은 강렬한 인상을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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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이번 호 표지에 나온 안드레스 세풀베다. (출처: 원문 기사에서 갈무리)

페냐 니에토의 당선이 확정되자, 세풀베다는 자신이 일했던 증거를 하나하나 파기했습니다. 메모리가 담긴 플래시 드라이브와 하드 드라이브, 그리고 휴대전화에까지 손수 구멍을 뚫어버리고 회로들은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버렸으며, 더 확실하게 하려는 듯 망치로 일일이 부쉈습니다. 각종 문서는 분쇄기에 넣고 찢은 뒤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고, 비트코인으로 결제해 익명으로 임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근거를 둔 서버들도 흔적이 남지 않도록 지웠습니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에서 치러진 선거 가운데 가장 지저분한 선거 중 하나라고 칭한 멕시코 대선의 비밀이 될 만한 결정적인 증거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지금 31살인 세풀베다는 자신이 지난 8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다니며 선거에 개입하거나 주요 정치 의제가 있을 때마다 배후에서 영향력을 미쳤다고 증언합니다. 60만 달러짜리 일거리였던 니에토의 대통령 선거 지원은 세풀베다에게 주어졌던 일 가운데 단연코 가장 복잡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세풀베다는 해커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니에토의 승리를 위해 일했습니다. 상대 후보 진영의 네트워크에 감청 프로그램을 몰래 깔거나 해킹을 시도해 주요 선거 전략을 손에 넣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허위 정보를 흘리거나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돈을 받고 도운 후보 니에토는 결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날 밤 세풀베다는 으레 그렇듯 맥주와 함께 홀로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했습니다.

세풀베다가 일을 처음 시작한 건 2005년. 처음 주어진 일은 상대편 후보의 웹사이트에 조직적으로 악플을 달거나 상대편에 후원금을 낸 이들의 명부를 입수하는 일과 같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세풀베다는 이쪽 일에 수완을 발휘해 몇 년 만에 정예 해커로 구성된 팀을 꾸립니다. 이들은 남을 감시, 감청하고 자료를 가로챘으며, 필요하면 물밑에서 흑색선전을 했습니다. 효력이 입증되면서 세풀베다의 몸값이 치솟았지만,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1만2천 달러를 주면 해커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해커들이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해킹하고 상대편 후보의 웹사이트와 유사한 사이트를 만들어 허위 정보를 유출해 유권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거나 아예 지지자들에게 대량의 스팸 문자, 이메일을 보내 상대방의 선거 운동을 방해하는 일 등입니다. 한 달 2만 달러에 달하는 프리미엄 상품도 있습니다. 돈을 더 받은 만큼, 해킹이나 흑색선전이 더욱 광범위하고 정교하게 이뤄집니다. 모든 일은 중개인, 혹은 정치 컨설턴트들을 통해 교묘하게 진행됩니다. 세풀베다는 자신이 당선을 도운 정치인들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몇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가 직접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도 얼마 안 됩니다.

세풀베다가 이끄는 해커 군단이 대선에 개입해 무언가 일을 한 적이 있는 나라는 니카라과, 파나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베네수엘라까지 라틴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풀베다의 인터뷰를 검증하기 위해 각국의 현 정권, 전임 정권 대변인 등 관계자들에게 접촉을 시도했지만, 멕시코의 제도혁명당과 과테말라의 국민진보당(National Advancement Party)을 제외하고는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적 콜롬비아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의 폭력을 목도하며 좌파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 세풀베다는 성인이 되어서도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우파 정치권의 조력자를 자처했습니다. 그는 우고 차베스나 다니엘 오르테가 등 그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좌파 정치인이 가져온 재앙에 가까운 혼란에 비하면 자신의 해킹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세풀베다의 시도가 족족 성공을 거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선거에 영향력을 미쳤던 단 몇 번의 성공만으로도 세풀베다는 자신이 21세기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흑색선전, 비방, 카더라 류의 소문을 통한 지지층 흔들기 등 온갖 지저분한 일이 제 주특기라고 할 수 있겠죠. 누구도 엄청난 조작이 있었을 거라고는 쉽게 의심하지 못하고 그저 사실로 받아들일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조작이랄까요?”

세풀베다는 콜롬비아 검찰청사의 뒷마당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스페인어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현재 그는 2014년 콜롬비아 대선 당시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도·감청을 하고 사생활이 담긴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했으며 범죄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콜롬비아 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기로 한 건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걸 대중에게 알리는 동시에 그를 통해 형을 감면받으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정치 컨설턴트 후안 호세 렌돈(Juan José Rendón). 세풀베다가 대개 자신을 고용했던 사람이라고 지목한 인물로, 라틴아메리카의 칼 로브(옮긴이: 미국의 정치 전략가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 참모와 보좌관을 지냈다.)로도 불리는 인물입니다. 렌돈은 세풀베다라는 인물을 안다고는 했지만, 그에게 그저 웹사이트 디자인을 맡겼을 뿐 세풀베다가 설명한 그런 불법적인 선거 개입에 관한 지시는 내린 적도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세풀베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 내용 대부분에 대해서도 렌돈은 일관되게 꾸며낸 이야기 혹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이야기라고 답했습니다)

“세풀베다요? 글쎄요, 한두 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웹사이트 관련해서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했을 테니 별로 기억에 남는 둘만의 대화 이런 건 전혀 없네요. 저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많이 쓰이는 건 사실이죠. 유권자들은 물론 후보들도 네거티브를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만약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 전략을 써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할 겁니다. 제가 뭐 성인군자는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범죄자라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세풀베다는 의뢰받은 일이 끝나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들은 대부분 철저히 파기했습니다. 다만 일종의 보험용으로 해커들과 몇몇 믿을 만한 이들에게 간접적인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남겨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세풀베다는 자신과 렌돈, 렌돈이 운영하는 정치컨설팅 회사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에 공개했습니다. 해킹과 후보자와 관련된 사이버 공격에 관한 우려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렌돈은 이메일이 가짜라고 답했습니다. 독립적인 컴퓨터 보안업체에 문의한 결과 해당 이메일이 조작된 것 같지 않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세풀베다가 지목한 몇몇 사안은 실제로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과 일치했지만, 검증할 수 없는 것도 많았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멕시코 정치권 관계자는 세풀베다와 렌돈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선거에서 실제로 영향력을 끼친 게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세풀베다는 라틴아메리카가 아닌 스페인 정치권에서도 일을 의뢰받은 적이 있지만, 바다 건너까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정중히 사양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대선도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있을지에 관해 묻자, 세풀베다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습니다.

“당연하죠. 불 보듯 뻔한 일이에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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