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의 고갈’이 사실이 아니라면(1/3)
20년 전,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부부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다이앤 타이스는 자제력에 관한 기념비적인 실험을 생각해냈습니다. “연구실의 작은 오븐에는 초콜릿 칩 쿠키가 구워지고 있었고, 실험실에는 초콜릿과 빵 내음이 가득했습니다.” 3천 번이 넘게 인용된 논문의 한 문장입니다.
심리학 실험의 역사에서 이보다 초콜릿이 더 중요했던 적은 없습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는 학생 자원자들 앞의 테이블 위, 한쪽 접시에는 갓 구운 초콜릿 쿠키를 두었고 다른 접시에는 무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대기하는 동안 한 그룹에는 무만 먹을 것을, 그리고 다른 그룹에는 초콜릿 쿠키만 먹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각각 풀 수 없는 퍼즐을 풀도록 지시받았습니다.
바우마이스트와 타이스는 학생들이 이 퍼즐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초콜릿 쿠키를 먹은 이들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 이들과 비슷한 시간인 평균 19분 동안 퍼즐을 푼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무만 먹은 이들은 훨씬 빨리 퍼즐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겨우 8분 동안만 퍼즐을 시도했습니다.
저자들은 이 효과를 “자아의 고갈(ego depletion)”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이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특성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돼 있으며, 그 양은 의지력을 씀에 따라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초콜릿 쿠키를 눈앞에 두고 무만을 먹는 것은 극도의 자제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는 의지력이 정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또한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생각이지만, 이 가설은 심리학 분야에서는 매우 혁명적으로 보였고, 수많은 후속연구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 후 수년 동안 바우마이스터와 타이스의 연구실, 그리고 다른 여남은 이들은 위의 실험과 유사한 수십 건의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먼저 연구자는 참가자들에게 초콜릿 쿠키를 먹지 못하게 하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서 반응을 참게 하는 등 참가자의 자제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주어 의지력을 고갈시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이들은 퍼즐이나 게임, 혹은 다른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시켰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빼앗고 의지력을 줄이는 수많은 과제를 발견했습니다. 인도 시골 지역의 극도로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은 비누를 살지 말지 결정하는 문제만으로도 의지력이 줄어든다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개들도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을 때 의지력이 감소했습니다. 백인들이 흑인 과학자와 인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경우 정신적 에너지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었습니다. 2010년, 마틴 해거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 분야에서 발표된 연구들을 모아 이 분야가 진정 의미 있는 분야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메타분석을 실시했습니다. 83건의 연구에서 소개된 198건의 독립된 실험을 종합한 결과, 이들은 “의지력의 고갈”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011년 바우마이스터와 뉴욕타임스의 존 티어니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에 기반을 둔 자기계발서적을 출간했습니다. 의지력의 고갈 현상을 어떻게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인 “의지력의 재발견”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설탕으로 당도를 높인 한 잔의 레모네이드만으로도 한 사람의 자제력이 상승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의지력은 근육과 같아서, 일상에서의 훈련을 통해 이를 신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에게 12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한, 종교적으로 편향된 과학연구 지원단체인 템플턴 재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간은 실제로 자신의 인격을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틀란틱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1990년대 시작한 이 분야가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연구실에서 같은 결과가 재현되었습니다. 나는 이 효과가 실재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다음 달 “심리과학 전망(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지에 실릴 한 논문은 이 분야의 여러 효과를 재현하는 데 필요했던 수많은 노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륙에 걸쳐 스무 군데가 넘는 실험실에서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효과를 재현하려 했지만, 이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곧, 자아력이 고갈된다는 증거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심리학 분야에서 이런 일이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런 현상이 “재현성 위기(reproducibility crisis)”라 불리며, 다른 분야에서도 이는 흔한 일입니다. 지난여름 발표된 한 연구는 심리학 실험 100건 가운데 단 40%만이 성공적으로 재현되었음을 보고했습니다. 이 연구에 대한 비판이 지난주 네이처에 소개되었지만, 이 비판 또한 희망적 사고로 가득 차 있고 증거를 무시했다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과학자와 과학 언론인들에게 이러한 혼란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연구논문이 심사를 통과해 학술지에 실렸다면, 적어도 그 결과가 진실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아의 고갈에 관한 새 연구는 이보다 더 큰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그 연구는 이 분야의 어느 실험 하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한 분야 전체, 곧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기본 아이디어 자체가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바우마이스터의 의지력 이론과 그의 기발한 실험 방법은 수많은 실험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수백 가지 다른 방법으로 그 효과는 재현되었고 메타 연구 역시 이를 확증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우연한 실험 데이터에서 등장한 황당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단단한 벽돌들 위에 수년간 쌓아 올린 견고한 건축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 자아의 고갈이라는 아이디어는 모래 위에 새겨진 헛소리처럼 보입니다. 이는 이 몇몇 과학자들의 경력의 상당수를 포함한 이 분야 전체의 연구가 잘못된 가설 위에 서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확실해 보였던 학설이 송두리째 무너진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우리에게 그저 우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끼게 만듭니다.
(슬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