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의 역사와 여성용 옷에 숨어있는 성차별
2016년 3월 4일  |  By:   |  문화, 정치  |  5 Comments

주머니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낵이든 전화기든 콘돔이든 거기에 넣어두고 싶은 걸 넣을 수 있을 만큼 크고 튼튼한 주머니는 정말 옷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그런데 특히 여성용 옷에서는 그렇게 긴요한 주머니가 제대로 달려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늘은 너무 작아서 쓸모없는 장식용 주머니에 대해, 여성용 옷에만 특히 주머니를 다는 데 인색했던 사회적인 성차별에 대해, 아이폰조차 넣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주머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언가를 넣고 다니기 위한 용도에 딱 알맞은 옷에 달린 주머니의 효용성이 주목받은 건 17세기 들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물건을 간편하고 안전하게 넣고 다닐 수 있기에 우리는 모두 주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됐죠. 주머니와의 사랑이 시작된 지 400년도 더 지난 겁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남자와 여자에게 주머니는 조금 달랐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여성용 옷에 제대로 된 주머니가 달려있던 세월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반면 남성용 옷에는 17세기 후반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주머니와 거의 비슷한 것이 달려 나오기 시작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소장한 자료를 보면, 당시 남자들의 옷에는 대개 주머니가 달려 있었지만, 여자들은 주머니를 차고 싶으면 주머니에 매단 실이나 줄을 허리에 몇 차례 두른 뒤 주머니를 페티코트(일종의 속치마) 아래 대충 동여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지갑이나 손가방 같은 것도 달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속치마 안에, 그리고 속치마 안에 또 입었던 더 속치마보다는 밖에 매단 주머니에 든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17세기 기준에서는) 밖에서 치마를 뒤집는 건 속치마가 있더라도 거의 옷을 다 벗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그러다 보니 허리춤에 찬 속치마 주머니에 든 물건은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너무나 불편했던 거죠.

1700년대가 되면서 어쨌든 이 여성용 주머니는 점점 더 화려해지고 크기와 장식이 다양해집니다. 무엇보다 치마에 작은 틈이 있어 그 틈을 통해 주머니에 든 물건에 손이 닿게 됐습니다. 돈이 좀 있는 집의 여성이었다면, (사실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가난한 서민들은 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그 안에 바늘집이든 장신구든, 케이크 조각이든 넣고 다니면서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남자들의 옷은 어땠느냐고요? 처음부터 불편할 게 없었는걸요. 계속 편리하게 주머니를 잘 쓰고 다녔겠죠, 뭐.

특히 18세기 여성들의 치마가 굉장히 품이 넓고 볼륨을 강조한 둥그런 라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 큰 주머니에 이것저것 많이 챙겨서 다니던 여성들도 있었을 거라는 짐작이 갑니다. 케이크도 여러 조각 넣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네요.

19세기 들어 여성용 주머니는 큰 위기를 맞습니다.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최근 들어 스키니진이 크게 유행했을 때 주머니에 무언가를 불룩하게 넣고 다니면 패션 테러리스트 소리를 들어야 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래서 아예 주머니 모양만 있지 아무것도 넣을 수 없는 바지도 나왔죠. 1800년대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풍의 드레스가 유행했는데 그리스풍이라는 게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고 날렵한 라인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파슨스 디자인스쿨의 엘리자베스 모라노(Elizabeth Morano)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성들이 그리스 고대 문헌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주머니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못 찾은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드레스에서도 주머니를 빼버린 거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드레스 라인이 정말 매끈해진 건 틀림없어요. 신고전주의풍 드레스를 생각해보세요. 거의 라인이 일자로 쭉 내려오잖아요. 이전 세기와는 완전히 바뀌었던 겁니다.”

그 결과 여성용 지갑 혹은 작은 손가방(purse)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레티큘(reticules)이라 불린 이 손가방을 주머니로 차고 다니는 대신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주머니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며 장식도 화려해집니다. 나아가 손가방은 경제적 신분을 상징하는 소지품이 되었습니다. 레티큘은 돈을 넣고 다니기엔 좀 작았습니다. 부유한 여성들은 대개 돈을 관리하는 일은 남편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주로 집에서 뜨개질하거나 차를 마셨는데, 반대로 살림이 넉넉지 않아 밖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여성들은 돈을 넣고 다닐 수 있는 큰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작고 예쁜 손가방이 상류층 부인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반대로 큰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건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으로 여겨져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바바라 버만(Barbara Burman)은 자신의 책에 “여성에게 허용된 아주 작은 주머니는 가정 내에서도 경제권은 대개 남편에게만 있었고, 여성의 재산권은 인정되지 않았음을 극명히 보여준다”고 썼습니다.

19세기 중반 들어 치마 안쪽에 (남자들이 바지에 그랬던 것처럼) 주머니를 아예 재봉해 달아놓은 옷을 입는 여성들은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유행이 한 차례 일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드디어 여자도 바지를 입기 시작합니다. 주머니의 편리함도 같이 누리게 됐죠. 1933년 여성의 의복을 다룬 한 신문은 독자들에게 매우 논쟁적인 주제를 직접 묻습니다.

“여자들이 바지를 입어도 되는가?”

이때만 해도 여자가 바지를 입는 건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가 널리 받아들여지던 시기입니다.

그래도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며 여성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필요해졌고, 자연스레 옷도 편리함을 중시하게 됐습니다. 여자가 바지를 입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죠. 드디어 여자들도 주머니다운 주머니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20세기 중반 들어, ‘여성용 바지’를 따로 디자인하게 된 겁니다. 여성용 바지는 뭐가 달라야 할까를 고민하던 디자이너들은 입은 사람을 날씬하게 보이도록 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다시 그렇게 여성용 옷에서 주머니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유명한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Christian Dior)는 1954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성용 옷에 있는 주머니는 무언가를 넣기 위한 것입니다. 여성용 옷에 있는 건 그저 장식용이고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잠시 남자들이 입는 헐렁한 옷과 바지가 여성용으로 유행하자 다시 좀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주머니를 되찾아 온 시기였죠.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1990년대 들어 이번에는 고급 디자이너 명품 핸드백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너도나도 핸드백을 들고 다니면 다시금 여성용 옷에서 주머니의 필요성이 떨어지게 되죠. 그리고 1990년대 말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필두로 딱 달라붙는 옷이 유행하면서 주머니는 다시 퇴출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남성용 옷에 달린 주머니는 놀라우리만치 그대로 있었습니다.

21세기가 됐습니다. 이제 제발 좀 주머니를 갖고 싶습니다. 아니, 뭐 대단한 거라고 유난을 떨 것도 없이, 그저 휴대전화만 쏙 넣을 수 있는 정도의 주머니 정도는 옷에 달려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용 옷에도 다시 주머니가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레드카펫 위를 걷는 연예인들의 옷 중에도 그런 옷이 눈에 띕니다. 에이미 슈머(Amy Schumer) 같은 트렌드세터가 멋진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취한 포즈가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만, 문제는 연예인들이 그런 옷을 입는다고 당장 일반인들의 패션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게다가 아이폰이 좀 커졌나요? 이러다가는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계속 손에 들고 다닐 수도 없으니 핸드백에 넣어놓고 잘 꺼내보지도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머니의 역사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간단합니다. 평등을 원한다는 거예요. 이 문제에 착안해 크고 튼튼한 주머니가 달린, 하지만 여전히 패셔너블한 옷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여성이 디자인한 옷들이죠. 어쨌든 너무 점진적이라 문제긴 해도 변화가 오고 있기는 합니다. 기다리다가 너무 지쳐버렸지만, 그래도 반가운 일입니다. (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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