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 더 파이널”은 페미니즘 영화일까?
2015년 11월 26일  |  By:   |  문화  |  3 Comments

*이 포스팅에는 영화 <헝거게임: 더 파이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열린 <헝거게임: 더 파이널>의 언론시사회에서 만난 한 중년의 뚱뚱한 남성 영화 평론가는 주최측이 휴대폰을 걷어간 것에 대해 불평하면서, 이렇게 기다리게 될 줄 알았다면 색칠놀이책을 갖고 올 걸 그랬다며 농담을 해댔습니다. 비슷한 외양의 또 다른 평론가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잠들어 코까지 골아댔죠.

이 중년 남성들은 젊은 층을 겨냥한 이 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무례한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헝거게임 시리즈가 젊은 여성들에게 얼마나 신선하게 와닿았는지 이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액션 영화에서 본드걸같은 눈요기도, 딱 붙는 탱크탑에 초미니 반바지를 입은 슈퍼히어로도 아닌 여성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요! <헝거게임> 시리즈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강하고, 당당하며,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인물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등장하는 비호감 영웅 코리올라누스를 빼다박은 캐릭터죠.

최종편인 <더 파이널>을 포함, 헝거게임 시리즈의 영화 네 편은 모두 벡델 테스트를 가뿐하게 통과했습니다. 즉,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하여 남자 이외의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뜻이죠. 최종편에서 줄리앤 무어가 연기하는 반란군 지도자 코인 대통령과 주인공 캣니스는 스노우 대통령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모읍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내전의 아픔과 공포, 걱정, 전술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죠. 이 영화에는 코인 대통령과 캣니스 외에도 지도자급의 여성이 여럿 등장합니다. 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남자나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대신 반란을 모의하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온전한 양성평등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인물은 결국 게일, 헤이미치, 비티와 같은 남성이죠. 캣니스가 전투를 앞두고 민간인의 희생을 우려하는 장면에서는 게일이 “캣니스, 이건 전쟁이야.” 라고 타이르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수 많은 고난을 겪으며 자신의 활로 수많은 사람을 죽여야했던 캣니스가 그 점을 모를리가요! 또한, 주요 남성 등장인물들이 잔혹하고 결단력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반면, 여성은 어딘가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냉소적이고 사나운 인물인 조애나 메이슨조차 자신의 성격이 나빠서 리더가 되지 못했다며 고민하죠. 캣니스를 연기한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출연료 협상 때 “어려운 사람처럼 보일까봐”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밝히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일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어쩐지 개운치 않습니다. 그 모든 일을 겪은 캣니스가 남편이 된 피타,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햇살 가득한 들판에 앉아있는 모습은 완벽한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어떤 상황에서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집어넣은 장면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결말은 “결혼 아니면 죽음”을 법칙으로 삼는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연상시킵니다.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으며 그 누구보다도 독립적인 캣니스도 이 법칙의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대의 영웅마저도 기어코 결혼을 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요? 영화의 마지막 1분이 없었어도 관객들은 충분히 캣니스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영화 전체를 깎아내리려고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캐피톨의 게임메이커들이 도시 곳곳에 심어둔 함정이 생동감있고 독창적인 특수 효과로 잘 표현되었고, 캣니스 일행이 어두운 지하 통로를 헤맬 때는 서스펜스가 넘쳤죠. 캐피톨에서 고문을 받아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 피타가 반군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도 선전 영상 촬영에 동원되는 모습에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잘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이 영화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파격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이처럼 관습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점이 못내 실망스럽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였다면 코리올라누스를 결혼시켜버리는 결말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죠.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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