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추론 과정에 있어서의 선택적 나태(Selective Laziness)
2015년 10월 30일  |  By:   |  과학  |  No Comment

만약 우리가 자신과 똑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의 주장에 늘 동의하게 될까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최근 한 연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생각에 잘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

인지과학자 에마뉴엘 트루셰와 그녀의 동료들은 “추론에 있어서의 선택적 나태(The Selective Laziness of Reasoning)”라는 제목의 연구를 최근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에 발표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선택적 나태’란 자신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더 깐깐하게 따지는 인간의 특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아마존의 엠터크를 이용해 참여자들에게 먼저 어떤 논리문제들을 풀게 했고, 그 답을 선택한 자신의 논리 혹은 의견을 쓰게 했습니다. 다음 실험에서 이들은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답을 보여주며 그 답의 타당성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때 참여자가 먼저 썼던 답을 다른 이들의 답 사이에 끼워넣어, 그 답을 다른 사람의 답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참여자들은 자신이 한 답의 약 60%를 타당하지 않고, 따라서 틀린 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그 답이 실제로 틀린 답일 때 더 높은 확률로 이를 틀렸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루셰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의 의견이라고 생각했을 때 더 비판적으로 대하며, 그 의견의 절반 이상을 기각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 의견의 정당성 역시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곧, 그 의견이 맞은 의견일 때보다 틀린 의견일 때 더 높은 확률로 기각했습니다…

이 실험들은 인간이 가진 추론에 있어서의 선택적 나태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추론을 통해 어떤 의견을 도출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려 하며, 그 결과 자신의 의견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같은 의견이라도 이것이 다른 사람의 것일 때, 우리는 비판적으로 이 의견의 정당성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결론이 인간의 추론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이 ‘선택적 나태’가 곧 대화를 유발하며 실제로 도움이 되는 능력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토론을 시작할 때 상대적으로 약한 의견으로 시작하는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 상대방을 처음부터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피할 수 있으며, 그 의견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문제점들이 논쟁 중에 언급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화에서 상대방은 대체로 반론을 제시함으로써 화자가 자신의 논증을 적절하게 다듬도록 도와줍니다…

즉, 첫 의견을 제시할 때의 나태함은 결점이라기보다는 추론 능력이 적응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이의 의견에 대해서는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선택적 나태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실험에서 한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위에 설명된 실험 과정 중, 약 절반의 참가자는 자신의 의견이 다른 이의 의견으로 바뀌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반면,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위 실험은 이들, 곧 눈치채지 못한 이들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자신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들은 최종 결과 해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논리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이들입니다.

따라서 어쩌면 위의 실험 결과에 대해 참여자들이 실험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일부 가능합니다.

(디스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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