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와 “성차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2015년 8월 27일  |  By:   |  세계, 칼럼  |  12 Comments

“여성혐오(misogyny)”란 역병과도 같은 존재로, 문명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여성혐오”가 그저 “성차별(sexism)”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는 상황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혐오”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영어 단어 자체가 “싫어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misein”과 여성을 의미하는 “gyne”에서 온 것이니까요. “인간혐오”를 뜻하는 “misanthropy”와 “여성혐오”는 사촌지간이고, 조금 낯선 “남성혐오(misandry)”라는 단어도 그 뿌리가 비슷합니다. 물론 단어의 의미라는 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래의 뿌리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단어가 고유의 뜻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죻죠. 그러나 뉴욕타임즈에서 단어 검색만 해보아도 최근 “여성혐오”는 “성차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갑자기 많아졌다기보다는 두 단어가 혼용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트위터 해시태그 #페미니스트남성들이나에게했던말들(#ThingsFeministMenHaveSaidToMe)에 대해 <쿼츠>지는 “악의 없는 말실수와 여성혐오적 악담 중 충격적인 것들을 모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해시태그 하에 소개된 “자칭 페미니스트 남성”들의 말(“가끔은 여성들이 성차별을 너무 개인적/감정적으로 받아들여서 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듯하다”, “여성혐오 자체보다 네가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방식에 더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네 뜻은 좋지만, 네 말을 듣다 보면 남자들만 가부장제에 책임이 있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네”, “남성들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해” 등)은 한심합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도 왜 여성들이 성차별에 대해 분노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죠. 하지만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원래 의미의 “여성혐오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상에 여전히 “여성혐오”가 넘쳐나고 여기에는 정확한 명칭을 붙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혼용은 오히려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에 도전한 도널드 트럼프가 TV 토론회에서 자신을 몰아붙인 여성 진행자를 두고 “눈이랑 다른 어디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죠. 이후 트럼프 선거 캠프는 “생각이 꼬인 사람들이나 이 발언에 월경을 떠올렸을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트럼프는 다시금 트위터에서 이 여성 진행자를 섹시하지만 멍청한 여성을 일컫는 “bimbo”라고 칭했죠. 트럼프가 “나는 여성을 아낀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그를 “여성혐오자”로 명명하는 데는 큰 고민이 필요없습니다. 그의 언행이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성차별(sexism)”이란 무엇일까요? 이 단어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최근의 일입니다. 1933년판 옥스포드사전만 해도 “sexism”이란 단어의 뜻은 “카드 여섯 장의 시퀀스”라는 의미 뿐이었으니까요. 현대의 영어사전들은 성차별을 “성별에 근거한 차별,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 “성에 근거하여 사람을 차별하고, 정형화하며, 깔보는 행위” 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가 특정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차별”은 범위가 넓고 보다 모호한 개념이죠. 차별과 정형화,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행동에서부터 불쾌한 언행까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와 마찬가지로 성차별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할 것이라는 인식은 불쾌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TV 토론회 이후 “트럼프를 내 딸과 같은 방에 두기 싫다”며 행사 초대를 취소한 공화당 거물 에릭 에릭슨도 “자연계를 보아도 암수의 역할은 구분되어 있고, 수컷이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여성은 남성과 대척점에 있거나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인간은 보완적인 관계를 갖는 법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고 그 때문에 분열이 생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남성(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이 절대 여성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는 단순히 “강도가 센 버전의 성차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 “정형화”를 넘어 “혐오”에 달하는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사람들은 분명 여성을 위한다는 의도를 갖고 있겠지만, 이 단어를 남용하면 그 뜻은 오히려 약해집니다. 원래의 뜻에 따라 엄격하게 진짜 혐오자들을 골라내고 딱지를 붙여야만 그 딱지의 위력이 더 강해지고, 사회의 “여성혐오”를 없애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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