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이코노미스트의 2차대전 종식 보도
2015년 8월 11일  |  By:   |  세계  |  No Comment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독일이 최종 항복 선언을 한 지 넉 달 만에 일본도 무기를 내려놓은 것이다. 이 순간을 전 세계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학살과 파괴는 중단되고, 인류는 창조적 에너지를 살상과 전투에 쓰는 대신 제대로 된 세상을 재건하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업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실패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끔찍하기 때문에, 승리를 맞이한 대부분의 사람은 안도와 감사를 느끼는 동시에 불안과 경외심 또한 느끼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쓸어버린 폭탄은 전쟁을 끝냈지만, 동시에 인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전쟁과 평화가 말 그대로 절멸이냐 생존이냐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 이들은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 문제에는 유사한 부분이 있다. 연합군은 독일과 일본 양쪽에서 국민을 오랜 기간 침략 전쟁으로 이끌어온 군 카스트 제도를 해소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오로지 전쟁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계로 전락해버린, 그러나 동시에 국민의 생계 수단이었고 이웃 국가에는 부의 원천이었던 기형적인 산업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지도를 다시 그리고, 전선을 구축하고, 주권과 영향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다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 국민을 세계 정복이라는 과업으로 이끈 자들의 권한과 영향력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군대와 장군, 정부 내 군국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일본의 부활과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모든 장애물을 없앤다는 취지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그러나 군국주의자들을 몰아낸다는 것은 오히려 쉬운 부분이다. 차후 천황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이 문제는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첨예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 일본은 천황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천황이 계속해서 일본을 다스리게 해달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고, 천황이 패배를 인정했다는 낙인을 쓰지 않도록 천황 아래에 있는 누군가가 평화 조약에 서명하게 해달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군주제와 국가주의가 갖는 위험한 연결고리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항복의 조건으로 군주제 폐지를 내걸지 않았다. 다만 모든 전선에 대한 정전 선언 및 항복 선언이 천황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앞으로 연합군은 천황의 존재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 그를 히틀러나 무솔리니에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가? 천황의 존재가 반드시 제국주의를 의미하는가? 호주와 같은 나라는 천황제 유지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천황의 지위가 이탈리아나 루마니아 국왕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에는 권한의 교체를 가져올 수 있는 헌법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점에서 일본의 천황은 독일의 파시스트 지도자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연합군은 천황제 존립 여부를 일본 국민의 손에 맡겨둘 가능성이 크다. 독일에서와 달리 일본에서는 독립적 정치 단체나 과거의 제도를 모조리 말살하려는 전체주의적 광풍이 없었고, 1942년 선출된 의회와 옛 정당들의 흔적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듯하다. 중국 침략 전에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총선에서 득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본은 재빨리 흉내를 내는 데 능하므로, 1940년 히틀러의 승리에 자극받아 단일정당 체제 실험을 시작했듯 영국과 미국의 민주주의적 가치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국가적 재건의 여부는 역시 상당 부분 경제에 달려있다.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 따라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부문을 제외하고는 여러 산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의 경우에서 증명되었듯, 일본의 산업적 무장을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필요한 산업은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일본의 경제를 통제하는 일은 외부로부터 이루어질 것이다.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의 주권은 네 개의 섬(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에만 미치게 되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평시 경제를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철광석 생산량 역시 미미한 수준이며 석유나 그 외 유용한 광물은 거의 없다. 만주가 없었다면 일본은 전시경제를 아예 구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으로 들어가는 수입품목을 통제하면 일본의 무장은 막을 수 있다. 일본도 결국은 국제 무역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이 처한 여건은 독일이 감내해야 했던 것보다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1938년 기준, 일본은 국민소득의 61%를 전쟁에 쏟아부어야 했다. 이와 같은 속박에서 벗어난 일본은 앞으로 번영을 되찾고 아시아 재건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일본 관련 전후 처리 사안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영토와 관련된 문제다. 일본은 해외에서 정복한 모든 영토를 빼앗기게 되므로, 유럽의 식민 열강들이 인도차이나와 동인도의 영토를 되돌려 받게 된다. 태평양의 도서들과 류큐제도는 미국에, 대만은 중국에 가게 되고, 한국 역시 독립을 약속받았다. 문제는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이 정복한 지역이다. 1931년 이후, 일본은 만주 전역과 몽골 일부, 중국의 해안 지역을 모두 잡아먹었다. 모든 것을 전쟁 이전 상태로 돌리려면 모든 영유권은 중국 정부에게로 가게 되지만, 현재 중국에서 두 세력이 싸움을 벌이고 있고 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간단한 해결책은 적용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는 러시아다. 1905년 러일전쟁 이전까지 러시아는 사할린 전역을 점령하고, 만주를 가로지르는 동청철도와 다롄의 항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만주와 한국에 걸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기존의 세력을 고스란히 되찾으려 하면,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까다로운 상황에서도 협상의 여지가 생겨, 중국이 루블린처럼 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만주와 내몽골, 신장에 대한 러시아 지배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쑹쯔원이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타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는데, 아시아 대륙에서의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내용이기를 바란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화해한다고 해서 극동의 오랜 갈등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열강이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모두의 의견을 구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이제 막 자리 잡으려는 평화를 완전히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열강들이 모이는 자리를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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