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ON] 은유 디자이너의 삶 (2/3)
2015년 6월 17일  |  By:   |  과학, 문화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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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곧, 겐트너의 주장처럼, 두 대상이 서로 적절할 때 은유는 더 잘 이해되는 것일까요? ‘사랑은 나무다’라는 은유에서 두 대상은 적절해 보이지만 ‘아이들은 기계다’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사랑은 유기적이고 아늑한 느낌을 주지만 기계와 아이를 같이 놓으면 어떤 어색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실제로 사람들이 이 은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니면, 글룩스버그의 주장처럼, 적어도 하나의 대상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것일 때 좋은 은유가 되는 것일가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도 떠오릅니다. 어떤 은유가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두 대상이 얼마나 적절한지가 영향을 끼칠까요?

2005년, 겐트너와 심리학자 브라이언 바우들은 “은유 이력(career of metaphor)’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는 단순한 직유(mere comparison)로 주어졌을 때 더 잘 이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은유 역시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라는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영어가 그 사람의 병목(bottleneck)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겐트너와 바우들이 맞다면, 처음에는 ‘영어는 병목과 같다(English is like a bottleneck)’라는 직유가 ‘영어는 병목이다(English is a bottleneck)’라는 은유보다 더 쉽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직유에 익숙해 졌을 때, 우리는 은유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어신경학자들 사이에서도 ‘카테고리로의 은유’론과 ‘연결로의 은유’론에 대한 논쟁은 진행 중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왜 은유가 비대칭적인지 (예를 들어, 은유의 앞 뒤를 바꾼 ‘감옥은 내 직장이야’라든지 ‘펌브는 붓의 일종이지’ 같은 것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물론 이런 논의들은 흥미롭지만 은유 디자이너에게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 사실 ‘카테고리 나누기’와 ‘연결’은 모두 은유를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방법입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은유 디자이너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은유를 만들까요? 은유 디자이너는 레이코프가 만들어놓은 개념적 은유들을 먼저 찾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은 움직임이다’, ‘상태는 위치이다’, ‘목표는 목적지이다’, ‘동기는 물리적인 힘이다’ 등의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비유에 등장하는 이중 의미를 가진 단어들 (상어, 베트남, 감옥, 건물 등)을 찾아봅니다. 또 파이프라인, 산, 세일 같은 단어들은 널리 쓰이면서도 쉽게 이해되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디자이너들은 또한 말하고자 하는 대상으로부터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개념들 역시 찾아봅니다. 이를 위한 사전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레임웍스 사에서 우리는 은유를 만드는 보다 시스템적인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인지와 관련된 단어들, 교육과 관련된 단어들, 또 추상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모았습니다. 나는 건물, 기계, 궤도(orbits), 토양, 파도, 진화, 중력 등에 대한 단어집도 만들었습니다. 구조물과 관련된 많은 은유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체, 용기(container), 표면, 가구 등의 구조물 리스트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리스트들은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게 해줍니다. 때로 모두가 모여 브레인스톰을 할 때, 어떤 친구는 항상 스포츠와 관련된 은유를 제안했습니다. 자동차에 관한 은유를 많이 말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는 운전, 변속기, 엔진 등 자동차 수리에 관한 단어를 많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새 차를 사라고 충고했지요.

은유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은유에 대한 은유를 가지는 것이 도움이됩니다. 나는 은유를 방에 비유합니다. 창문과 문을 통해 우리는 바깥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창문을 너무 위에 설치하면, 사람들은 창밖으로 나무 밖에 보지 못할 겁니다. 창문을 너무 아래쪽에 단다면 잔디밖에 보지 못하겠죠. 태양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남쪽에 달아야 합니다.

때로 방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때로 창문이 한 쪽으로 쏠려있기도 하고, 너무 새 집이라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당신은 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무엇을 만들어야 합니다. 편안한 소파를 마련해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뇌는 기계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은유는 따로 소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우리 뇌는 망가질 수 있고 또 고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의 은유는 더 설명적이어야 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은유들은 실제 컴퓨터가 작동하는 과정을 거의 포함하지 않으며, 해커, 바이러스, 낚시 등과 같이 은유 자체에 더 많은 설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은유 디자이너가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때, 그것은 방안의 가구에 해당할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창밖을 보게 만듭니다. 겐트너와 바우들의 ‘은유 이력’ 가설을 방의 비유로 설명하자면, 새로운 방에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에는 그 방이 가구들로 가득 차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방에 익숙해질수록, 가구들은 필요 없어집니다. 아무런 가구가 필요하지 않은 은유가 어쩌면 최고의 은유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은유는 언제나 구체적인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직접적이지 않은 인과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개념에 대해서는 가구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후생유전학(epigenetics)에 대한 은유를 위해서는 언제나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유전자라는 개념은 충분히 대중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새로운 은유의 방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종종 사람들은 가구의 색깔이나 창의 구조에 대해 불평하거나, 창틀처럼 사소한 문제를 칭찬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이들이 창 밖을 쳐다보기전에 어색하다는 이유로 방을 떠나버린다는 것입니다. 은유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역시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감정적 반응이 있고 또한 인지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3부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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