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인들이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
2015년 4월 9일  |  By:   |  과학, 세계, 칼럼  |  No Comment

-<스켑틱>의 발행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가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근 공화당 대선주자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힌 테드 크루즈는 여러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를 믿지 않습니다. 그는 3월 16일 한 토크쇼에서 “위성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지난 17년 간 지구는 전혀 더워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1998년을 꼭 집어 말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1998년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이 올라갔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치 이념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골라내는 수작을 접고 국립해양대기청에서 나온 데이터 전체를 살펴보면, 장기적으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진보 진영에 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진보주의자들 가운데는 GMO와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들, 화석 연료의 사용이 빈곤 해소에 기여하는 면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자신의 신념 때문에 자녀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양 진영에 고루 존재합니다.

이성의 시대와 계몽주의의 산물인 미국 혁명이 일어난지 300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이런 종류의 논란에 판결을 내리는 것은 과학이지, 정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과학의 판결이 나와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현실을 초래한 것은 인간이고, GMO는 안전하며, 계속 증가하는 인구의 수요를 감당하려면 우리는 모든 에너지원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사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는데 급급한 나머지,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잊은 듯 합니다. 과학과 이성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잊고, 과학적 주제를 대상으로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특히 테드 크루즈와 같은 정치인들이 이런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회에 유입된 과학 논리는 비단 과학의 승리를 낳았을 뿐 아니라, 서구 자유주의 전통의 도덕적 진보를 불러왔습니다. 크루즈가 외쳐대는 “예외적 미국 민주주의”도 예외가 아닙니다. 16, 17세기의 과학 혁명 이래, 지성인들은 갈릴레오, 뉴턴 등 위대한 과학자들이 자연과학의 문제를 푸는데 사용했던 방법을 사회, 정치적 문제를 푸는데 활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계몽주의 철학자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존 로크, 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토머스 페인 등은 이성과 과학적 탐구에 큰 가치를 두었고, 이런 마인드가 곧 인간의 천부적 권리, 평등,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과학은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학 논문으로 꼽히는 <리바이어던>은 원자의 움직임에서 시작하며, 저자 토머스 홉스는 자신을 “문명 사회의 갈릴레오”라고 불렀습니다. 몽테스키외도 <법의 정신>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정부를 “만유인력”이 존재하는 “우주의 시스템”에 비유했고, 데카르트의 연역법을 사용했죠. 프랑스 국왕의 주치의였던 프랑수와 케네는 경제 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기 위해 실증적 근거를 수집해 체계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이 연구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바로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책,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입니다. 국부론 역시 과학 혁명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과학적 연구입니다.

이처럼 지난 300년 간 인류는 과학을 활용해 어떠한 정체, 경제, 법적 제도가 가장 좋은지와 같은 도덕적인 문제들을 판단해왔습니다. 의사들이 인류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전염병 치료 방법을 찾고 개발해온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런 전통을 포기하자니요.

위대한 계몽주의 과학자들이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인류는 실제로 정의와 자유,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인들이 죄 없는 여성들을 화형시킨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기상 이변과 전염병, 흉작이 마녀의 짓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녀를 화형에 처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가 그것을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상 이변과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신에게 인간이나 동물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대인이 전염병을 옮기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특정 인종이나 성별이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중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공화, 민주 양 당의 지도자들은 지구 온난화나 GMO를 둘러싼 논란을 마녀 사냥이나 노예제 따위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현대 정치의 모든 개념은 문제 해결에 과학과 이성을 동원하고자 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분열을 조장하는 당파 정치로 기후변화, 에너지 정책, 예방 접종과 같은 사안에 접근하는 짓을 그만두고, 과학과 이성을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류의 발전을 위한 길이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원하는 방향일 것입니다. (폴리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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