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번창하는 도시 시애틀의 이면, 불평등
2015년 3월 23일  |  By:   |  경제, 세계  |  3 Comments

1970년대 초 시애틀(Seattle)에 본사를 두고 있는 보잉이 직원 수천 명을 감축한 사건은 시애틀 경제의 침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근래 몇 년 사이 시애틀은 보잉은 물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곳이자 전 세계 어느 도시 부럽지 않은 소위 ‘잘 나가는’ 도시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값비싼 고급 아파트, 테슬라 대리점이 들어설 시내 중심가에 아마존은 시애틀의 랜드마크가 될 본사 건물을 새로 지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큰 성공을 거둔 기업들을 필두로 경제가 대단한 호황을 누리자 도심 아파트에는 웬만큼 돈이 없으면 살 엄두도 못낼 지경이 됐습니다. 시애틀 남쪽 지역의 방 하나 딸리 아파트 한 채의 월세는 3,500 달러로 우리돈 400만 원에 육박합니다. ‘잘 나가는’ 도시의 이면에는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동시에 빈부 격차가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고 있는 도시라는 오명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도시가 어쩌면 시애틀인지도 모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더욱 벌려놓는 건 미국에서 가장 심한 역진세(regressive tax)를 채택하고 있는 워싱턴 주의 조세 정책입니다.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 주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가계가 소득세로 번 돈의 17%를 내는 반면, 소득 상위 10% 부자들이 내는 소득세율은 번 돈의 2.7%밖에 안 됩니다. 지난 2009~2012년 주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 증가분은 상위 1%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시애틀 근교 벨뷰(Bellevue)에서 나고 자라 주립대학을 졸업한 닉 하노어(Nick Hanauer) 씨는 젊은 나이부터 창업과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가 온라인 광고 회사 하나를 마이크로소프트에 6조 원이 넘는 값에 팔고 난 뒤로 명실상부한 부자가 되었죠.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가 시애틀은 물론 미국 경제와 사회 전반의 발목을 붙잡을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명의 전담팀을 만들었습니다. 하노어 씨가 착안한 해결책 가운데 하나는 최저임금 인상입니다. 이미 시애틀의 최저 임금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시간당 15 달러입니다.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 달러) 하노어 씨는 워싱턴 주의 최저임금을 한 발 더 나아간 시간당 16 달러로 올리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연방 기준인 최저임금 7.25 달러를 적용하고 있는 아이다호 주와 이웃한 지역 출신의 주의회 의원들은 지역 경제를 망칠 게 뻔하다며 쓸데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부자의 위선이라고 하노어 씨의 주장을 일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노어 씨의 주장은 적어도 시애틀에서는 꽤 지지를 받는 편이기도 합니다. 시애틀은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여전히 금기시되어 있는 미국에서 사회당 소속의 시의원을 선거로 배출시킨 도시이기도 합니다. 서민 경제 안정(affordability)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에드 머레이(Ed Murray) 시장은 시 의회가 통과시킨 ‘뜨거운 감자’ 최저임금 15달러 법안을 예정대로 집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에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을 연방 정부가 아닌 주 정부, 지방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 만으로 과연 얼마나 해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 실험 또는 환경 정책의 유연한 집행은 몸집이 커 굼뜰 수밖에 없는 연방 정부보다 지방 정부가 성공적으로 해낸 경우가 많지만, 경제 불평등의 문제는 달리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지역의 소득이 늘어나 고급 주택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원래 살던 사람들은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터전을 잃고 밖으로 밀려난다는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시애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노어 씨 같은 부자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까지 무분별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거나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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