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닷컴 인터뷰] 이성애의 발명 I
2014년 9월 25일  |  By:   |  문화  |  No Comment

당신이 만약 길거리에서 안느 블랭크와 그녀의 연인을 만난다면, 당신은 그들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블랭크는 명백한 여성이지만 그녀의 연인은 털 하나 없는 매끄러운 얼굴의 극히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의 연인은 일반적인 남자나 여자가 아닙니다. 그는 XXY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랭크의 연인은 이때문에 여자 동성애자, 남자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으로 오해 받으며 이 두 사람은 동성애 관계와 이성애 관계 또는 그 사이의 모든 관계로 오해받습니다.

블랭크는 이성애의 역사에 대한 도발적인 자신의 새 책 “이성애자(Straight)”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성애”가 얼마나 인공적인 개념인지를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냅니다. 성과 문화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온 역사가이자 작가인 그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정신의학분야가 성장하면서 어떻게 이 개념을 새로이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업적 협력관계의 개념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한 낭만적 합일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진화론적 생각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분리시켰는지를 설명합니다. 블랭크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성에 대한 여러 측면을 재치있게 해체합니다.

쌀롱(Salon.com)은 블랭크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성애의 근원과 결혼의 진화에 대해, 그리고 “브로맨스(bromance, 남자들간의 우정)”가 왜 그렇게 멋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Q: 남자와 여자는 인류가 존재한 내내 서로 성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성애의 “역사”에 대해 말할 수 있나요?

A: 이성애의 역사는 마치 우리가 종교의 역사를 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늘에 무언가를 빌어온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사람들의 행동양식에는 구체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특별한 장소, 특별한 행동의 변화, 그리고 특별한 말들이 있으며 여기에 영향을 준 특별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사건들, 장소들, 날짜들이 있습니다. 그런것이지요.

Q: 그래요. 그럼 “헤테로섹슈얼(이성애, heterosexual)”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나요?

A: 그 단어는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언론인이었던 까로리 마리아 께르베니(Károly Mária Kertbeny)가 “호모섹슈얼(동성애, homosexual)” 이라는 단어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당시 프러시아는 동성간의 성적인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께르베니는 이 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이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프러시아의 그 법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글과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는 “헤테로섹슈얼”과 “호모섹슈얼”이 동성 사이의 관계와 이성 사이의 관계를 동등하게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는 이 단어들을 통해 인간은 동일한 두 종류의 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간에는 우열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단지 어떤 동일한 감정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일 뿐임을 강조하려 했던 것입니다.

Q: 그러나 그 용어가 알려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그 용어는 널리 퍼지게 되었나요?

A: 1880년대와 1890년대의 정신과 의사들은 직업 의료인이긴 했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새로운 용어를 사용할 경우, 그 용어는 곧 사람들에게 마치 전문용어인양 알려질 수 있었지요.

정신의학은 헤테로섹슈얼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그러나 동시에 거부감을 일으키는 다양한 성적 취향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빅토리아 말기에서 20세기 초의 2-30년은 엄청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던 시기였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의 질서에 맞는 정체성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그 중 한가지가 바로 자신의 성적 취향이 표준이라고 말하는 것이엇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일으킨 이들은 “음 나는 남자지만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 나는 뭔가 남들과 다르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아니라 “나는 변태가 아니야. 나는 남자랑 자기 싫어. 나는 정상이고, 병적이지 않으며, 옳고, 좋은 사람이야. 나는 사람들이 나를 유용한 사람으로 생각했으면 좋겠고,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Q: 그 시대에 유행하던 사회진화론과도 관련이 있겠군요.

A: 사회진화론은 매우 큰 역할을 했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던 시대에 자신이 어떤 ‘문제’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해답’에 속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Q: 이런 용어의 변화가 실제 세상에서 어떤 차이를 가져왔나요?

A: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할머니와 이야기했었어요. 올해 88세인 내 할머니는 헤테로섹슈얼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도 자신을 이성애자라 칭하지 않던 시대를 살았지요. 그녀는 프로이트가 이런 변화와 관련이 있을 거라 말했어요. 이는 소규모 엘리트 그룹에서 나온 어떤 의학적 권위를 가진 생각이 점점 더 대중에게 퍼져 나갔을 가능성을 의미하지요. 나는 그녀의 시대에는 이성애자라는 것이 그저 자신이 정상을 뜻하는 한 단어였다고 생각해요. 프로이트도 그런 의미로 사용했지요. 어떤 특성이 정상적인 것으로 자리잡는 과정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누군가가 자신이 말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잘 성장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면 이성애자 어른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Q: 조지 천시는 자신의 책 “게이 뉴욕(Gay New York)”에서 “동성애자”라는 개념이 있기 전에 남자의 성적 취향은 보다 자유로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물론이죠.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양(착한 사람)과 염소(나쁜 사람)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웬지 다른 사람들을 꼭 그렇게 나눠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지요.

Q: 당신은 인간의 역사 중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은 성적 취향이나 성관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고 책에 써놓았어요.

A: 결혼은 사람들의 욕망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었죠. 결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관계를 통해 가지게 되는 아이였지, 그 사람과의 성관계를 원하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의무이자 결혼으로 인해 생긴 채무를 갚는 행위였고, 당신이 바라고 당신이 원하는 그런 상대방으로서가 아닌, 그저 동료이자 사업파트너로서 같이 잤던 것이지요. 우연히 그 상대방이 예쁘고 잘생겼거나 또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라면 아주 좋았겠지만, 어쨌든 그런건 결혼에 있어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우리는 결혼에 있어 경제적이거나 가문에 끼치는 영향보다 상대방의 매력이나 욕망, 사랑, 낭만과 같은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성이 주부로서의 삶을 택함으로써 경제적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40대 초반이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성의 경제적 법적 권리가 남성과 동등해지면서 결혼 상대방을 택하는 것이 각자의 욕망, 성과 사랑, 동료애 등을 우선하게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살롱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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